현대시의 깃점은 소월의 『진달래꽃』·만해의 『님의침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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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금까지 우리나라 현대시의 기점을 30년대 중반 김기림을 중심으로한 모더니즘 시운동으로 잡던 한국시사의 통설에 대해 이를 20년대 중반 김소월의 『진달래 꽂』, 만해의 『님의침묵』 등에서 찾아야한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을 받고있다.
한국현대시의 연륜을 10년정도 앞당겨 놓아야한다는 이같은 주장은 정한모씨(서울대교수·시인)에 의해 나왔다. 정씨는 최근 창간된 시 무크지 『현대시』에 발표한 논문 『한국현대시의 반성』에서 자신의 이같은 주장을 폈다.
정씨는 김기림을 중심으로한 30년대중반의 모더니즘시 운동을 현대시의 기점으로 본 것은 외국문학을 전공한 당대 평론가들이 서구적 관점에서의 모더니즘이론을 한국시에 적용한 결과에 따른 것이며, 이것을 『외래적 관점에 의한 식민지사관의 또 다른 변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25년의 김소월시집 『진달래 꽃』과 26년에 나온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이 현대시와의 연관에 있어 모더니즘보다 더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소월의 『진달래 꽃』은 전통적 율격과 정서가 주류이면서도 형태나 내용면에서 한국자유시의 성숙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것은 한 개인의 천재성으로서가아니라 하나의 범문단적 현상으로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
소월에 의하여 훌륭하게 시적 성과로 구현된 한국시의 전통성인 서정성과 율격은 현대시가 계승해야할 자산이라고 규정했다.
만해의 『님의 침묵』은 시를 다만 정감의 운율적 표현정도로 생각하던 당대 문학현실에 사상적 깊이, 산문시에 가까운 리듬의 창조로 자극을 주었다.
정씨는 20년대 중반이후를 하나의 문학사적 전환점으로 삼는데는 프로문학과 국민문학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논쟁에서도 찾아진다고 말했다. 이 대립은 민족을 무시하고 세계성을 지향한 계급주의 문학에 대한 민족주의 문학의 대두였으며 또 프로문학의 편내용주의에 대한 반발이었다 것.
정씨는 이같은 시기의 우리시가 「극단적 외국편향」 또는 「뿌리없는 실험의식」에서 우러나온 모더니즘적 발상과는 달리 민족적 전통에 뿌리박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현대시 연구가 지나치게 서구이론과 방법론의 자로 재단됨으로써 민족적 주체성·전통성을 상실하고 학문적 객관성을 저해해 왔다』고 비판하면서 『외국문학의 영향이란 항상 표면적인 것이고, 한국문학의 심층에는 2천년의 뿌리를 가진 문학전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염두에두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씨의 이같은 주장은 한국근대문학사에있어 「현대」의 시발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포괄적인 시사를 해준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끌고 있다. 또 한국현대문학사를 이식모방사로 진단한 견해에 대한 강한 반론제기로서의 의미도 지녔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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