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스타 산실 한체대, 스포츠 한류 메카로 만들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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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호 12면

최정동 기자

서울 송파구 오륜동에 있는 국립 한국체육대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산실이다. 1977년 개교 이래 올림픽·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획득한 메달의 3분의 1 이상을 이 대학 학생들이 목에 걸었다. ‘양궁 여왕’ 김진호, ‘도마의 신’ 양학선, ‘빙상 3남매’ 이상화·모태범·이승훈 등 세계적인 스타를 배출했다. 그런 한체대가 최근 2년간 제자리를 맴돌았다. 2013년 3월 당시 김종욱 총장이 퇴임한 이후 올 2월까지 ‘총장 공석’ 사태를 겪은 것이다. 그간 네 명의 총장 후보가 정부로부터 이런저런 연유로 임명을 받지 못하다 ‘4전5기’ 끝에 올 2월에야 총장실의 주인이 결정됐다.

김성조 신임 한국체육대 총장

3선 국회의원(옛 한나라당) 출신의 김성조(57·사진) 총장이다. 한체대나 스포츠계와는 관계가 없던 그가 총장으로 임명되자 대학가와 체육계에선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김 총장은 덤덤했다. 그는 “스포츠와 대학교육 분야에 경험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그런 경력이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학교를 이끌어갈 수 있는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치인으로서 쌓은 조정·통합·소통 능력을 발휘해 한체대를 글로벌 스포츠 특성화 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4일 한체대 총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국제대회 메달 절반은 한체대가 기여
-총장 선출을 둘러싼 내홍이 있었다.
“지금은 별문제 없다. 내가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한체대 교수 출신인 전임 회장이 총장 공모 지원을 권유했다. ‘총장 공석이 길어져 한체대가 어려우니 경륜을 살려 학교를 이끌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처음엔 망설였다. 의원 시절 교육문화위원회에서 활동한 적은 있지만 체육계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사학법 재개정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을 때 사학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합하는 능력을 발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지 않았던 새 길에서 소신껏 일하면 보탬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월 5일 총장에 임명됐는데 취임식도 않고 직무를 시작했다.
“학교 사정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다른 대학 총장처럼 성대하게 취임식을 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대신 지난 3월 2일 취임식을 대신한 비전 선포식을 했다. 중심가치를 공명정대로 정했다. ‘공평하고 사심 없고 밝고 큰 마음’으로 구성원이 뭉쳐 학교의 상징인 ‘청마’처럼 다시 질주하며 스포츠 한류의 메카로 만들자는 선언이었다.”

-스포츠 한류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의미는.
“한체대하면 으레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떠올린다. 현역 재학생이 전체 메달의 3분 1 이상을 딴다. 졸업생까지 합하면 절반 가까이 될 것이다. 우리 대학에 입학하려면 전국 규모 대회에서 3등 이내에 들어야 한다. 그런 엘리트 선수들이 세계에 나가 한류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스포츠도 K팝·드라마와 함께 한류에 기여는 했지만 체계적이고 연속적이지는 못했다. 그래서 단순히 엘리트 선수만 키우는 대학이 아니라 스포츠 한류 중심 대학, 글로벌 스포츠 대학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선수들의 외국어 능력을 향상시키고 인성·문화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스포츠 한류와 글로벌화는 중요하다. 어떤 복안이 있나.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브랜드화해 스포츠 한류 메카의 하드웨어를 만들 계획이다. 외국에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스포츠 교실을 만드는 것이다. ‘박주봉 배드민턴 교실’ ‘김진호 양궁교실’ 등이 그 예다. 현재 세계 20개국 대학·협회와 맺고 있는 자매결연도 확대할 생각이다. 스포츠 강국에 선수를 보내 훈련하면 자신감과 실력이 배가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스포츠 한류의 글로벌화를 진행시키겠다는 것이다.”

예산 탓 투자 못해 … 고교 시설 빌려 훈련도
-그러려면 재정과 인력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전체 재학생이 2800명인데 900명 정도는 전액 장학생으로 기숙사 생활을 한다. 그런데 한 해 대학 예산은 400억원도 안 된다. 와서 보니 수영장에 다이빙대도 없더라.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선수들이 인근 고교에 가서 연습을 하는 게 현실이다. 기숙사는 더 심각하다. 1980년대 태릉에서 이곳(오륜동)으로 옮기면서 지었는데 당시 들여놓은 침대가 작아 바닥에서 자는 학생들도 있다.”

-짧은 기간에 느낀 게 많은 것 같다. 어느 분야에 역점을 두려는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이다. 국민적 관심도 중요하고 한체대를 중심으로 준비도 잘 해야 한다. 겨울올림픽은 생소한 종목이 많다. 주최국으로서 전 종목 출전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런데 선수가 너무 부족하다. 봅슬레이는 겨우 1명이다. 한체대에는 한 학년에 종목 선수가 20명밖에 안 된다. 주최국으로서 큰 문제다.”

-선수를 더 확보하면 되지 않나.
“대학구조 조정이 진행 중인 데다 수도권 대학은 정원 규제가 엄격해 옴짝달싹 못한다. 겨울올림픽 종목 선수를 한 학년에 40명은 확보해야 하는데 답답하다. 교육부가 전액 장학생인 선수 정원을 평창 겨울올림픽 때까지만이라도 한시적으로 늘려줬으면 좋겠다. 그 후 다시 묶어도 된다. 11조원 이상 쓰는 대회에 전 종목 출전은 꼭 필요하다. 평창 겨울올림픽이 성공하려면 경기 운영요원과 자원봉사자 육성도 필수다. 전문 지식과 체력도 필요하고 악천후에도 대비해야 한다. 한체대가 나서 경기 운영요원과 자원봉사자를 교육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 시설도 빨리 만들어야 한다.”

-대학이 너무 선수 중심으로 운영되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은 않다. 엘리트 체육인 육성과 생활체육을 통한 건강한 사회 구현이라는 두 가지 설립 목적에 충실하고 있다. 선수 학생들이 중심(체육학과)이긴 하지만 일반 학생도 수능시험을 치르고 입학한다. 일반체육학과에는 국내 유일의 노인복지체육학 전공도 있다. 2005년 개설했는데 노인회관이나 요양병원, 보건소 등에서 운동전문요원으로 활동한다. 고령화 시대의 유망 직업이다.”

-학생과 교수와는 어떻게 소통하나.
“(웃으며) 정치인 출신이라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현장에 자주 달려간다. 학생들의 워크숍에 찾아갔더니 깜짝 놀라더라. 격의 없이 대화를 했고, 야구 점퍼도 선물로 받았다. 지난달 2일 대학원 신입생 환영회를 찾았더니 개교 이래 총장이 온 것은 처음이라고 하더라. 나는 올해 입학생들과 2015학번 동기다. 같은 날 입학했고 같은 날 취임했다. ‘동기 좋다는 게 뭐냐. 함께 달리자’고 했더니 금방 동질감이 생겼다. 교수들과도 격의 없이 소통하겠다.”

-대학은 지역의 명소다. 다른 대학과는 달리 주민들과의 친밀도가 낮은 것 같다.
“캠퍼스를 전면 개방하면 운동장 천연 잔디 등 시설 관리에 문제가 생긴다. 다른 대학과는 달리 특수성이 있어 부분 개방을 해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주민들을 위한 골프교실·건강교실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재학생들이 인근 초·중·고를 찾아가는 ‘방과후 학습’도 검토 중이다. 아이들이 어떤 스포츠에 관심과 자질이 있는지 함께 운동하며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다.”



김성조 1958년 경북 구미 출생. 대륜고와 영남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으며 16, 17, 18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구미시 갑) 국회의원을 지냈다. 당 전략기획본부장, 정책위원회 의장,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올해 2월부터 제6대 한국체육대 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양영유 기자 yangy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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