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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를 향한 연민 어린 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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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매거진] 40주기에 되돌아보는 이만희 감독의 영화 세계

한국영화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이만희 감독(1931~75)이 44세의 나이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40년이 흘렀다. 그의 영화는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 그가 사라진 뒤 더 큰 평가를 받고 있다. 그와 같은 비범한 감독을 젊은 나이에 잃었다는 사실은 가슴 아프지만, 그가 남긴 주옥같은 작품을 오늘날 곱씹어 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40주기를 맞아 이만희 감독의 영화 세계를 되짚어 본다.

1975년 4월 13일 오후 6시 30분. 유작이 된 ‘삼포 가는 길’을 채 완성하지 못하고 이만희 감독은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간경화였다. 의사에게 “더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다. 나를 살려 달라”고 했지만, 결국 숨을 거두었다. 15년 동안 만든 영화 51편과, 소설가 김승옥이 쓴 다음과 같은 묘비명만 남긴 채. “당신은 포탄 속을 묵묵히 포복하는 병사들 편이었고, 좌절을 알면서도 인간의 길을 가는 연인들 편이었고 그리고 폭력이 미워 강한 힘을 길러야 했던 젊은이의 편이었다.” 전설이 된 ‘만추’(1966)를 비롯, 그의 영화 중 절반 가량은 필름이 유실돼 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남아 있는 작품들만으로도 우린 그 문장이 결코 미사여구나 과장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영화의 황금기로 불리는 1960년대. 그는 한국의 장르영화를 한 단계 끌어올렸고, 그만의 영화 언어를 실험하는 스타일리스트였으며, 흥행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가 떠난 지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이만희 감독의 영화가 가장 사무치게 다가오는 건,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연민 어린 시선과 그 쓸쓸함을 담고 있는 디테일 때문이다. 정치적 억압과 심의와 검열은 물론, 열악한 제작 환경과 상업주의 체계 안에서 그가 만든 영화들은 당대의 여느 작품들과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다. 그를 충무로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끌어올린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을 보자. 이 영화에서 빛나는 건 전쟁영화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아니다. 다양한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 감상주의로 치닫지 않는 인간애, 전쟁터에 대한 세세한 묘사 등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이만희 영화만의 어떤 ‘분위기’다. 그는 동시대 충무로에서 가장 강한 아우라를 지닌 감독이었으며, 그의 영화는 종종 시대를 앞서거나 시대와 충돌했다.

만추.

스타일, 흥행 장르의 혁신가

1931년 10월 6일 서울 왕십리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이만희 감독은 고등학교 시절 최인규(1911~? ) 감독의 ‘자유만세’(1946)를 보고 영화를 꿈꾸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그가 처음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연출이 아니라 연기였다. 제대 후 그는 연기 학원에 다녔고, 충무로의 스태프가 된 후에도 단역 생활을 했으며, 자신의 영화에도 종종 모습을 비쳤다. 그는 거울 앞에서 직접 연기를 해가며 시나리오를 썼고,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좋은 연기를 뽑아내는 데 귀재였다. 그의 영화 중심은 캐릭터, 곧 그들이 이루는 앙상블이었으며 배우가 뿜어내는 감정이었다.

이런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배우는 문정숙(1927~2000)이었다. 그는 ‘마의 계단’(1964) ‘검은 머리’(1964) ‘만추’ ‘귀로’(1967) 등 이만희 감독의 필모그래피 절반을 차지하는 25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팜므파탈로서 혹은 멜로의 주인공으로서 문정숙이 표현하는 감정의 깊이는 대단했다. 그녀는 자신을 소극적으로 억압하지 않고, 버림받으면 복수하는 인물을 주로 연기했다. 이를 통해 이만희 감독은 1960년대 충무로에 가장 파격적인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문정숙을 최고의 성격파 배우 자리에 등극시킨 셈이다. 그는 남성들의 집단 캐릭터를 드러내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지만, 여성의 심리를 표현할 땐 페미니스트로 여겨질 정도로 섬세했다.

그가 연출부 생활을 시작한 것은 1956년. 이어 1961년에 가족 드라마 ‘주마등’으로 데뷔했고, 1962년 스릴러 ‘다이알 112를 돌려라’로 흥행 감독이 된다. 한 여자를 둘러싼 비정하고 거친 남자들의 이야기로, 이듬해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내놓으면서 그는 30대 초반에 최고의 상업영화 감독의 자리에 오른다. 흥미로운 건 이로써 그가 어떤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이후 열일곱 명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1·7 클럽’을 결성했는데, 그들은 인근 지역에 몰려 살며 거의 매일같이 이만희 감독의 집에 모여 작품에 대해 토론했다고 한다. 이것은 충무로 중심의 주류 영화계에 대한 일종의 대안 세력이었으며, 당시로선 드문 집단 시스템이기도 했다.

이후 1960년대 말까지, 이만희 감독의 스타일은 점점 확장된다. 지금은 모두 볼 수 없는 영화들이지만, ‘시장’(1965)은 이만희 리얼리즘의 본격적 시작이었고, ‘만추’는 대사나 이야기보다 이미지와 영상이 중심이 된 실험적 작품이었다. ‘기적’(1967)은 세트 촬영이나 배경 음악 없이 오로지 기차 안에서만 이야기를 전개한다. 또한 그는 장르의 혁신가였다. ‘마의 계단’은 한국의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개척했으며, ‘검은 머리’는 세련된 범죄 누아르였고, ‘귀로’는 신파를 벗어나 모더니티를 획득한 멜로 드라마였다.

시대와의 불화 그리고 절망

하지만 영화적으로 승승장구하던 시기, 이만희 감독은 큰 시련을 맞이한다. 1964년 12월, ‘7인의 여포로’가 용공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북한군을 인간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반공법에 걸린 그는 구속되어 한 달 넘게 감옥에 갇혔다. 이후 그 영화는 무자비하게 삭제돼 ‘돌아온 여군’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됐고, 중앙정보부는 집행 유예로 풀어주는 조건으로 그에게 반공영화를 만들라 요구했다. 그가 살고 있던 세상은 그런 곳이었다. 예술가에게는 지옥과도 같던 시대 말이다. 어쩌면 그는 그 시대와 갈등하고 불화하다 짧은 삶을 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제작 당시 검열로 개봉하지 못했다가 37년 만인 2005년 대중에게 공개된 ‘휴일’(1968)은 그 시기를 살아가던 이만희 감독의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작품이다. 휴일의 서울을 떠도는 한 남자를, 느슨한 이야기 구조 안에서 스케치하듯 보여주는 이 영화는 절망적이면서 쓸쓸하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이 작품 이후 이만희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조금씩 하향 곡선을 그린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폐소 공포에 갇힌 듯한 묘사를 통해 사회상을 은유했던 ‘생명’(1969), 만주 웨스턴의 대표작 ‘쇠사슬을 끊어라’(1971), 전쟁이 터지던 시점을 밀도 있게 담아낸 ‘04:00-1950’(1972) 등의 작품들은 그의 비전이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지만, 상업 감독으로서 입지가 흔들리면서 그는 힘든 세월을 보냈고 1975년 ‘삼포 가는 길’을 유작으로 남기며 세상을 떠났다. 우연한 동행자가 된 세 아웃사이더 주인공들의 로드 무비 ‘삼포 가는 길’. 그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 따스하다.

이만희 감독 전작전 이영화 놓치지 마세요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이병훈)은 이만희 감독 40주기를 맞아 4월 23일부터 5월 14일까지 전작전을 개최한다. 대표작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 자료원이 보유하고 있는 이만희 감독의 영화를 모두 상영하는 것. 그 중 놓쳐서는 안 될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상영 일정 및 자세한 정보는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www.koreafilm.or.kr) 참조.

마의 계단(1964).

마의 계단(1964)

이만희 감독의 뛰어난 비주얼 감각을 만날 수 있는 작품. 신분 상승과 복수의 테마가 뒤엉킨 가운데, 호러와 스릴러의 요소가 결합한다. 1960년대 한국 장르영화를 한 단계 끌어올린 수작. 기괴한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검은 머리(1964).

검은 머리(1964)

여성이 주인공인 범죄 누아르. 지하 조직 두목의 아내인 주인공(문정숙)은 부정을 저지른 뒤 얼굴에 상처를 입고 거리의 여자가 된다. 배우 문정숙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감상할 수 있다. 카메라 앵글이 자아내는 긴장감도 일품이다. 2009년에 복원한 작품이다.

휴일(1968).

휴일(1968)

이만희 감독이 당국의 개작 요구를 거부하는 바람에 제작 당시에는 상영되지 못했던 작품. 2005년에 복원했다. 산업화로 치닫던 시대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도시의 휴일을 떠도는 청춘의 초상과 가난한 풍경을 향한다.

글=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사진=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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