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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국제 재난대응로봇대회 나가는 휴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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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오는 6월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 재난대응로봇경진대회(DRC)에 출전을 앞두고 21일 오후 대전시 구성동 KAIST에서 맹훈련 중인 휴보. [프리랜서 김성태]

자동차 핸들을 움켜잡은 ‘손’이 야무졌다. 세 개뿐인 손가락이지만 핸들을 돌리는 데 막힘이 없었다. 오른쪽 발은 액셀을 밟았다. 차가 멈춘 뒤 내리려는 듯 천천히 자동차 차체를 양손으로 꼭 잡았다. 지상에 발을 디뎠다. 작게 “쿵” 소리가 났다. 무릎을 살짝 굽히고 오른발과 왼발을 움직였다. 자세가 안정되자 차체를 잡고 있던 오른팔과 왼팔을 서서히 풀었다.

 지난 21일 대전시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휴보랩)에서는 맹연습이 한창이었다. 선수촌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이 돌았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것은 키 168㎝, 몸무게 80㎏의 건장한 로봇이다. 로봇의 이름은 ‘DRC HUBO’. 올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포모나에서 개최되는 국제 재난대응 로봇 경진대회 ‘DARPA 로봇 챌린지(DRC)’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DRC는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재난대응 관련 로봇기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개최하는 세계 최대의 로봇 경진대회다. 2013년부터 예선을 거쳐 미국·유럽·중국 등 전 세계 25개팀이 최종 결선에 진출했다. 우승 상금은 200만 달러다. 국내에선 KAIST와 로보티즈(똘망), 서울대(똘망 하드웨어 사용) 3개팀이 참가한다. ‘휴보의 아버지’ 오준호(61) 교수가 이끄는 팀 KAIST는 20명의 카이스트ㆍ레인보우(교내 벤처기업)의 연구진으로 구성돼있다.

 이날은 미션 전체를 한 번에 해보는 최종 점검이 한창이었다. 재난 발생 상황을 가정해 ▶자동차 운전 ▶차에서 내리기 ▶문 열기 ▶밸브 잠그기 ▶드릴로 구멍 뚫기 ▶험지 돌파 ▶계단 오르기와 깜짝 과제까지 여덟 가지를 수행한다.

 휴보는 단계마다 “문을 열어라” “밸브를 돌려라”와 같은 단순한 지령만 받는다. 등쪽에 무선통신기기(넷기어)를 장착하고 있지만 대회장에서는 중간중간 통신을 차단한다. 기본 지령을 제외하고는 로봇이 알아서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휴보의 예선 성적(8위)은 기대에 못 미쳤다. 지형지물을 확인하는 라이다(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와 카메라가 실외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카메라로 본 2D 이미지와 라이다로 본 3D 이미지를 조합해 어떻게 움직일지 ‘판단’한다. 기초적인 인공지능 기능이다.

 발바닥 힘을 측정하는 센서에도 문제가 있었다. 몸무게(65㎏)가 가볍다 보니 바람이 불면 흔들려 잘 걷지 못했다. 이후 휴보는 대대적인 개조과정을 거쳤다. 기본 설계부터 다시 시작했다. 센서를 새로 만들어 달았고, 몸무게도 80㎏으로 불렸다. 이후 조금씩 업그레이드했다.

 휴보의 가슴 부분에는 두 개의 컴퓨터가 들어 있다. 오재성(25·박사과정) 연구원은 “한 개는 움직임을 통제하는 컴퓨터, 다른 하나는 라이다와 카메라로 확인한 영상과 같은 데이터를 축적해 전송하는 컴퓨터”라고 설명했다. 두 개의 배터리로 휴보는 4시간가량 움직일 수 있다. 각 관절에는 모터제어기가 들어 있어 컴퓨터의 지령을 받아 자연스럽게 각도 조절을 한다. 이동할 때는 무릎을 꿇었다. 종아리 앞쪽과 발끝에 있는 바퀴를 이용해 신속하게 이동하면서도 넘어지지 않는다. 넓은 시멘트 벽돌이 켜켜이 쌓인 험로를 지날 때도 막힘이 없었다. 부드러운 스펀지(발포고무)로 된 발바닥이 정확하게 경사면을 디뎠다. 계단 높이도 꽤 높았지만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휴보가 여덟 가지 미션을 수행하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42초. 이 시간을 30분 안으로 당겨 1등을 하는 것이 목표다. 전체 과정을 다 소화할 수 있는 로봇이 많지 않아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우승도 가능하다. 레인보우의 허정우(33) 수석연구원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연습하는데 1시간마다 전체 과정을 다 해본다”며 “계속 집중하면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보완해야 하기 때문에 연습을 마치면 진이 다 빠진다”고 했다.

 로봇기술은 기계공학·전자전기·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융합기술이 적용된다. 세계 로봇대회에서 우승하면 한국의 과학기술이 그만큼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특히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로봇 사용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화재·폭발·붕괴와 원전사고에 대응하기 위한 국민안전로봇 프로젝트에 1000억원대의 예산을 투입하기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오준호 교수는 “로봇은 원자력발전소나 전쟁터와 같이 사람이 갈 수 없는 곳과 의료 현장 등에서 절박한 사람들에게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며 “로봇 기술의 발전은 끝이 없고 부가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대전=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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