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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사학법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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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개정사학법의 핵심은 외부인사를 법인이사회에 참여시키는 개방형 이사제다. 학교운영위원회와 대학평의원회가 추천한 인사로 이사진의 4분의 1 이상을 선임한다(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가 2배수의 개방형 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이사회가 선택.선임한다). 논란이 됐던 교사회.학생회.학부모회의 법제화는 유보됐다. 그러나 내부감사기능 강화를 위해 감사를 2명으로 늘리고 그중 1명은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의 추천인사로 임명된다.

이와 아울러 친족의 이사 참여를 정수의 3분의 1에서 4분의 1로 줄이고 공립과 마찬가지로 4년 중임 학교장 임기제가 도입됐다. 학교장은 학교 예산을 편성해 학운위와 평의원회 자문을 거쳐 이사회에서 심의.의결해야 한다.

이번 개정 법률은 여러 측면에서 위헌적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이 법안의 명분은 사립학교 운영의 민주성.공공성.투명성 제고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이 위헌 시비를 무릅쓰며 사학법을 개정할 명분으로 충분한지 의문이다.

우선 사학법 개정 사유로 주장되는 민주성은 재단법인인 학교법인을 사단법인으로 착각한 '법률적 무지(無知)'의 소산이다. 사립학교를 운영하는 주체인 사학재단은 사단법인(社團法人)이 아니라 재단법인(財團法人)이다. 재단법인이란 특별한 공공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개인이 사유재산을 기부해 만든 법인을 말한다. 재단법인은 이러한 가치를 공유하고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기부된 재산을 관리.운영케 한다. 따라서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외부기구로 하여금 이사를 선임토록 '강제'한 개정사학법 조항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유재산권, 사학운영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재단법인은 사단법인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사단법인은 사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단체다. 따라서 모든 사원들은 법인운영에 대해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래서 사단법인의 경우에는 사원총회라는 민주적인 구조를 통해 운영된다.

재단법인인 학교법인의 설립이념을 구현하는 구체적인 운영주체는 이사회다. 만약 학교법인의 교육목적이 학교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가장 잘 구현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법인이사회가 그런 운영구조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외부인이나 학교구성원들이 강제하거나 요구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학교법인-학교 간의 관계는 주주-회사 간의 관계와 같다. 회사 직원들에게 의사결정권을 부여할지는 그것이 수익.매출 등 기업가치에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경영진(주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경영진)의 판단에 전적으로 좌우된다.

다음, 사립학교의 공공성을 따져보자. 혹자는 "공공기관인 학교가 어떻게 회사와 같은가"라며 공박한다. 학교는 교육서비스를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공공성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공공기관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교육이라는 공공적 목적을 위해 학교재단에 기부된 재산은 사회에 공여된 공공재산은 아니다.

명백히 공공기관인 정부기관의 운영은 어떠한가. 소속 공무원이 반드시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하는가. 국민만이 정부기관 운영구조에 대해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교법인만이 학교 운영구조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다.

따라서 기부된 재산의 구체적인 가치추구 수단으로 설립된 학교법인이나 학교의 운영에 대해 외부기관이나 학교구성원이 민주를 명분으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월권(越權)이다.

마지막으로, 사학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은 교육부의'무능과 직무유기'를 자인하는 꼴이다. 기존의 교육법.민법.형법.상법 등으로도 충분히 비리사학을 규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나 학교법인의 운영은 회사와는 달리 복잡한 상업적.금융적 거래가 거의 없다. 따라서 교육부나 교육청의 감독 의지만 있다면 학교 비리는 손쉽게 발본색원할 수 있었다. 사학비리의 단골메뉴로 감독공무원과의 유착이 문제됐던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공립학교는 전교조가 이미 장악했다는 것이 교육계의 평가다. 전교조의 마지막 남은 '신천지(?)'가 사립학교인 셈이다.

사립학교는 우리나라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육의 22.4%와 44.8%, 대학 교육의 85.6%를 차지하는 중요한 교육주체다. 사학법 개정 직후 김진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사학의 투명한 경영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미 정치.이익집단화한 전교조가 정치적으로 악용하려 한다면 개정사학법은 우리 교육계에 '안전핀이 뽑힌 폭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전교조는 그동안 주요한 교육 현안과 관련해 빠짐없이 '민주'를 핵심가치로 내세웠다. 민주는 건강한 사회라면 반드시 추구해야 할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민주가 모든 사회분야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절대가치는 아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민주과잉(民主過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개정사학법도 민주과잉의 단적인 예다. 과잉민주는 어쩌면 보다 소중한 가치인 개인의 '자유' 또는 다른 중요한 헌법적 가치들을 억압하는 '전체주의의 함정'으로 사회를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조전혁 인천대 경제학교수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