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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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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리카 10. 혼돈으로부터 질서 그리고 다시 30일까지, 서울 동숭동 국민대 제로원 디자인센터, 02-745-2490

수녀와 신부가 뽀뽀를 한다. 후천성 면역결핍증으로 죽어가는 환자가 나온다. 울긋불긋 콘돔이 눈부시다. 이탈리아가 손꼽는 패션 브랜드 '베네통'이 전 세계 소비자를 놀라게 했던 광고 이미지다. 베네통 광고는 일상과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적 이미지로 시각 디자인계에 논란거리를 던져왔다. 이 광고를 만드는 곳이 베네통의 커뮤니케이션 연구센터인 '파브리카(Fabrica)'다. 파브리카는 라틴어로 워크숍을 뜻한다. 1994년 이탈리아 트레비소에 파브리카를 세운 루치아노 베네통 회장은 "가상의 꿈과 미래의 커뮤니케이션이 구체적으로 계획되고 연구되는 실험실"이라고 연구소 성격을 말했다. 전 세계에서 25세 이하의 작가를 모아 무한대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판을 벌여놓은 이곳이 10년 역사를 쌓았다.

정부와 시민의 교통안전에 대한 의식을 촉구하는 에릭 레이엘로의 2004년 작 ‘도로안전’ 포스터, 담배에 반대하는 건강 전문의 협회 주문으로 2005년 파브리카가 만든 ‘흡연 반대’ 시위 도구, 세계보건기구를 위해 가브리엘 리바가 2003년에 제작한 국제 폭력 방지 캠페인 (왼쪽 위부터 시계 반대방향).

서울에 온 파브리카 10주년 기념전은 상투성을 비웃고 독창성을 향해 온몸을 던지는 시각 예술가의 아이디어 경연장이다. 흰 천으로 덮은 시체가 고속도로 표지선처럼 늘어선 엽기적인 작품은 '도로 안전' 포스터다. 피로 물든 발바닥이 섬뜩한 작품은 폭력을 고발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캠페인 이미지다. 막 자궁을 빠져나오는 신생아의 사진으로 공포를 말하는 사진 작업, 갈라진 발등을 운동화 끈처럼 묶는 '창조성을 구함'포스터 등 더 새롭고 더 독창적이며 더 혁신적인 소통을 창조하려는 젊은 예술가의 뜨끈뜨끈한 발언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서울전은 그동안 한국 학생이 한 명도 없던 파브리카에 우리 젊은이 4명이 가게 돼 뜻깊다. 파브리카의 시각디자인분과 학과장인 오마르 불피나리와 교수진이 포트폴리오(작품집) 심사를 해 안남영(이화여대 시각디자인학과), 장은아(계원조형예술대 영상디자인학과), 이정은(경희대 산업디자인학과), 이달우(조선대 시각디자인과) 4명을 뽑았다. 말이 필요없는 강한 이미지로 세계인을 하나로 묶는 시각 연대 파브리카에 한국도 동참하게 된 셈이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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