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갈수록 나빠지는 한·일관계, 돌파구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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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반둥회의 60주년 기념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데 이어 5개월여 만이다. 한국이 일본과 정상회담을 3년째 피해온 사이 잇따라 중·일 정상회담이 이뤄진 것이다.

 한국이 고립됐다고 호들갑을 떨 일만은 아니다. 30분간 이뤄진 이번 약식 회담에서 두 정상이 실질적 진전을 이룬 사안은 많지 않다. 더구나 회담 바로 다음날 일본 각료들이 집단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걸 보면 중·일 관계가 밀월로 돌아섰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국이 주목할 부분은 따로 있다. 중국이 대일 외교에서 보여주고 있는 ‘원칙 속의 유연성’이다. 중국은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를 전격 참배하자 항의의 뜻으로 5년간 일본과 정상회담을 보이콧했다. 그러나 제3국에서 열리는 다자회담에선 고이즈미와 여러 번 약식 정상회담을 갖고 외교 수요를 해소했다. 일본을 ‘도적(盜賊)’이라 부를 만큼 반일감정이 강한 시 주석이 반년 사이 두 번이나 다자무대에서 아베 총리를 만난 것도 그런 전례를 따른 것이다. 일본과 갈등 속에서도 접점은 이어가는 중국식 실용외교를 박근혜 정부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크다.

 우리에게 중·일 접근보다 더욱 걱정되는 건 날로 심해지는 일본의 혐한 정서다. 오죽하면 삼성이 일본에 수출하는 휴대전화에 자사 로고를 지웠겠는가. 한·일 관계의 악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시점이다. 정부는 일본의 과거사·영토 망동엔 단호히 대응하되 안보·경제는 좀 더 유연하고 현실적인 타개책을 세워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 중재에 회부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되 이 문제를 한·일 정상회담과 연계시켜온 기존 입장은 완화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이나 도쿄에서 아베를 만나는 게 어렵다면 제3국에서 열리는 다자회담에서 약식 회담을 갖고 동아시아의 미래를 논의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와 함께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했던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논의를 재개하는 것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