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는 서로돕고 부끄럼없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5월15일, 또 한번의 스승의 날을 맞는다. 스승의 날이 있음은 오늘날 스승이 지고 있는 짐이 그토록 무겁고 오려운 것이라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원로 교육자 최태호씨의『젊은교사에게 보내는 글』과 여교사 박명숙씨의 『스승의 보람』이란 글로 오늘날의 스승에게 격려를 보낸다.

<젋은 교사에게|교사는 오직 최선 다하는 길뿐 구호보다 교육 존중 풍토 필요
최태호<전 춘천교육대학장>
R군, 편지 고맙소.
어린이날에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어버이날에 둘아가신 부모님이 그리워 문득 옛 스승에게 감회를 적는다는 사연이 진정 고마웠소.
나야 20안팎 나이로 교단에 서서 멋도 모르고 남을 가르쳤다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추억인데, 벌써 40을 바라보며 교단 경력 15년은 넘었을 R군이 어버이에게 드리는 마음으로 나에게 글월을 보낸다 하니, 나야말로 몸둘 바를 모르겠소.
요즈음 흔히들 교단에만 서면 모두 스승이라고 하지만, 개꼬리 3년에 황모되는가. 나에게 스승 대접하는 것이 어찌 격에 맞는다 하겠소.
하기야 스승이 따로 있나, 제자가 받들어 모실 때 스승자리에 오른다 하니, 나도 덕분에 염치없이 스승이 되어봅시다.
공자·맹자도 제자들이 그 언행을 수록하여 인류의 스승이 되었고, 기독교 성서와 불교의 경전 또한 제자들이 대성한 것이니, 말하자면 나도 제자 잘 둔덕인가 하오.
나는 교육을 종교 신자가 기도하는 모습이라 믿소. 진인사 대천명이란, 교사가 최선을 다해 가르치면 제자들은 천명을 받아 스스로 성장한다는 뜻이오.
R군, 해가 거듭할수록 교육이 두려워진다는 편지사연, 나는 R군이 인간적으로 상당히 원숙해 간다고 믿소.
두려워질수록 자기가 현재하고 있는 노력이 헛된것 갈고, 근무조건에 짜증도 나고, 교단에 서게된 것이 후회도 된다는 고백이 솔직하다고 믿어 흐뭇한 마음 금할 수 없소. 언제나 답장을 안하는 내가 예외적으로 이 글을 쓰는 까닭이 바로 R군의 정신적 갈등이 당연하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오. 스승의 날이 다가오는데 교사에게 감사하다는 건지, 매질하는 건지 당혹감만 는다는 R군의 말, 이 역시 당연한 실감이오.
우리 주위에는 구호만 내건 기념일이 참 많소. 명실상부하지 않게 연중행사처럼 기념일만 만들어 실속 없는 행사가 많기는 많소. 스승을 존경해야 한다는 솔깃한 발언, 예우를 깍듯이 해야한다는 주장, 항산 있어 항심이 있으니 생활보장을 잘 해주어야, 사기가 올라 교육에 전념하리라는 논의…. 아마 올해 스승의 날에도 좋은 말씀들이 만발할 것이오.
청소년에게 기대를 걸고있는 사회와 당국이 참으로 할 일은 교육을 무엇보다도 존중하고 교사 를 도와주어야겠다는 결의를 실천하는 일이라고 믿소. 교육풍토의 조성이오. 교사의 뜻과 합치는 단합 말씀이오. 내 경험에 의하면 비교육적인 견해를 가지고 학교당국과 교사에게 사명감을 가지라고 압력을 가하는 일이 더 많았던 것 같소.
R군,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가 과연 교육자로서 양심에 부끄러운 일은 없는가,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는가 겸허하게 자신부터 살펴봅시다. 교사는 전문직이오. R군의 고민은 바로 그 증거요, 참 고맙소.
내가 즐겨 읽는 한시를 편지 답장의 증표로 하나 선사하리다.
채약구장생 하여고죽자 일식서산미 청풍유불사(약을 구해 오래 살기만 바라네. 백이숙제는 어찌하나. 비록 고사리 캐어 연명했지만, 그 맑은 풍류의 도 천추에 전하네).
천년 만년 후 그 누가 그 사람의 영화와 치욕을 알겠는가. 자기 인생의 뜻을 깨끗이 편 사람만이 영원히 살아남는다는 선비의 흥겨운 독백이오.
R군의 고민은 R군을 구원할 것이오. 보다 더 충실한 인간이 되기 위한 시름이니 용기를 내어 활달하게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함께 희망을 굳게 가집시다. 나는 R군과 같은 제자스승이 있음을 자축하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