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9> 진주 정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진주(진양) 정씨는 동성동본이면서도 각각 시조를 달리하는 8파(진양8정) 가 있다. 원조는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6촌장중 한사람인 지백호라는 설이있다. 그의 후대에서 정씨의 분관·분파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정예 (고려건국공신·문하시중평장사) 정자우(동·호장) 정장(고려말· 통정첨지중추원사) 정억(고려말·문하시중평장사) 등은 진주 정씨 산맥의 4대봉우리다. 오늘날 진주정씨는 이들 후손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관향「진주」는 고려조의 역대선조들의 세거지-. 진주정씨는 고려의 개국에 참여한 집안으로 고려조에 많은 인재를 냈다.

<한본에 8파 현존>
정시양(양관대제학) 정신열(병부상서) 정임덕(판도판서) 정유(예의판서) 정홍긍(대제학) 정석(평장사) 정수(대제학) 정수규(정당문학) 정모(평장사) 정천익(공민왕·전객령) 정을보(찬성사) 등이 고려의 진주정씨 얼굴들이다. 이들중 정천익은 중국에서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의 장인으로 사위와 함께 목화종자를 재배하고 보급하는데 큰 공적을 남겼다.
정수규는 동국18현의 한사람인 유명한 안향의 사위다. 고려말 창왕때 대사헌을 지냈던 정온은 조선개국후「불사이군」의 충절로 가문의 절의를 지켰다.
그는 당시 이성계일파의 쿠데타 음모로 정계가 어지럽자 장님을 위장하고 지리산 청학동에 은거했다. 조선개국후 이성계가 벼슬을 내렸으나 거절하고 어지러운 세상 보지않겠다고 장님행세를 했다. 이에 세상사람들이 그의 충절을「포은의 죽음(사)」「치은의 은거(거)」 에 비겨「우곡의 눈멈(맹)」이라고 칭송했다 한다.
진주정씨는 조선개국후에도 탄탄한 인맥을 형성했다. 고려사를 편찬한 정이오(태종·대제학)와 그의아들 정분(세종·우의정), 정척(단종·예조참판·충청도관찰사·지중추원사) 등은 조선초기의 대표적 인물들. 이들중 정분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저항하다 숨진 단종조의 명신이다. 문종은 어린 세자(단종)롤 남겨놓고 숨을 거두면서 황보인, 김종서등 두정승과 정분 (당시좌찬성) 에게 단종을 잘 보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후 정분은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오르고 전라·충청·경상도의 도관찰사가 되어 지방순회에 나섰다. 이때(1453) 계유정란이 일어나 황보·김두정승은 수양대군 일파에 죽음을 당하고 정분은 악안으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았다. 그는 당시 수양의 측근이었던 정인지와는 처남남매간이었다.
정인지는 수양대군 옹립음모를 꾸미면서『천하의 인심이 수양대군에게 기우는데 형님의 생각은 어떠시온지요』 라는 내용의 서신을 정분에게 띄워 은근히 그의 협조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충신은 불사이군』이라는 한마디로 이를 거절했다고 전한다. 충남공주군사곡면호계리에 있는「경모재」는 그의 충절을 기리는 부도묘다.
세조조의 청백리요, 명필로 이름을 떨쳤던 정척의 가문은「효」로써 문중을 빛냈다. 성종때 청백리요, 유명한 효자였던 정성근(직제학)은 그의 아들이다.
정성근은 성종이 세상을 뜨자 연산군의 폭정속에서도 홀로 3년상을 치렀다. 당시 연산군은 전국에「단상법시행」을 명령했으나 정성근은 이에 반기를 들고 성종에게 충절을 바쳤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대노한 연산은 갑자사화때 그를 처형했다. 그의아들 정주신(승정원박사) 또한 아버지가 억울하게 숨지자 이를 애통하게 여기고 식음을 전폐, 끝내 굶어죽었다.
진주정씨가 낳은 대표적인 학자로 정경세가 있다. 서애 유성룡의 수제자였던 그는 나이 스물셋에 문과에 급제하고 호당에 뽑혔던 수재-. 인조때 이조판서를 거쳐 대제학에 올랐다. 당대의 뛰어난 성리학자로 사계 김장생과 함께 예학파를 형성했다.
임진왜란의 명장 정기용장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임진왜란당시 상주성탈환, 정유재란때의 성주·합천·초계·의령성탈환 전투에서 눈부신 전공을 세웠다. 광해9년 삼도통제사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에 올라 남해안을 방어하다 통영진중에서 숨졌다. 그는 곤양출신이어서 일부 문헌에는 곤양정씨의 시조로 전하고 있다.
정명세(해미현감·임진왜란공신) 정성(학자·선무원종일등공신) 정사제(임진왜란공신·부수찬에 추증) 정귀세(봉사) 등도 임진왜란당시 구국의 전장에서 순절했다.

<해방뒤로 인재많아>
해방후에도 진주정씨는 사회각계에 많은 인재를 냈다.
외무장관을 지냈고 8선의원의 관록을 자랑했던 정일형박사(철·법박·작고)와 그의아들 정대철(정박·전국회의원), 정재각(문박·전동국대총장), 정재환(법박·전동아대총장·작고)과 그의아들 정수봉(법박·동아대총장), 정재구(전제일제당사장), 정창운(전검찰총장·작고) , 정동규(약박·전숙명여대약대학장), 정헌주(전교통부장관·전국회의원), 정순덕(전국회의원·대통령비서실정무제1수석비서관), 정상천(전서울시장), 정원식(철박·전서울대사대학장) 등이 진양8정이 낳은 인재들이다. 인구는 약30만. 경남 진주, 충남의 공주·연기·대전, 전남일원에 밀집해 살고 있다.

<지명인사>

<종친회제공·무순>
▲정휘한(조선대 의대학장) ▲정덕기(변호사) ▲정동석(전목포교대학장) ▲정종학(법박· 충남대법정대학장) ▲정세환(전국회의원) ▲정한우(재일실업가) ▲정용호(의박) ▲정헌조 (전국회의원) ▲정연택(실업가) ▲정을섭(조선대교수) ▲정평암(실업가) ▲정용식(검사) ▲정대용(실업가) ▲정병섭(군수) 정원강(군수) ▲정창섭 (전남대교수) ▲정은환(판사) ▲정현두 (의박) ▲정광선(전남도공무원교육원장) ▲정재완(전남대교수) ▲정경용(검사) ▲정진안(의박) ▲정동식(전경찰서장) ▲정정옥(동) ▲정삼술(실업가) ▲정봉기(광주교대교수) ▲정재완 (전국회의원) ▲정장오(판사) ▲정광진(의박) ▲정희순(실업가) ▲정규(의박) ▲정현(의박) 정규섭(전주미공사) ▲정극수(의박·경북대교수) ▲정대협(의박) ▲정봉석(의박) ▲정석영 (의박) ▲정영수(의박) ▲정영호(이박·서울대교수) ▲정윤주(작곡가) ▲정재기(이박·중앙대교수) ▲정재원(의박) ▲정재홍(의박) ▲정선(철박·동국대교수) ▲정종락(이박) ▲정유경 (의박) ▲정준(전국회의원) 정영관(농박·경상대교수·진주정씨 은열공 용산제건립추진위원장) ▲정헌재(농박) ▲정헌준(중경대교수) ▲정헌국(예비역공군준장) ▲정종근(실업 가) ▲정종혁(실업가) ▲정두영(전북대교수) ▲정근호(문박·교수) ▲정현환(의박) ▲정진안(의박) ▲정진택(실업가) ▲정응순(검사) ▲정헌주(충남방적전무이사) ▲정헌준(전외환은행장) ▲정경희(한국일보논설위원) ▲정영화(의박·한림대교수) ▲정종철(실업가) ▲정재억(실업가)

<다음주는 남평 문씨>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