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구금된 흑인 또 의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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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가 숨지자 21일 시민들이 경찰서 앞에 모여 ‘프레디에게 정의를’이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볼티모어 AP=뉴시스]

경찰에 연행되며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던 흑인 청년이 경찰에 구금된 일주일 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장소는 흑인 인구가 압도적인 미국의 항구도시 볼티모어. 사건은 백인 경관이 달아나던 흑인 월터 스콧을 등뒤에서 조준사살한지 8일 뒤인 12일 일어났다. 두 사건은 백인 경찰에 의한 비무장 흑인의 사망이라는 사건의 골격이 닮은 꼴이다. 미 법무부는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 이번에도 현장을 포착한 것은 시민들의 휴대폰 카메라였다.

 호리호리한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25)는 이날 아침 경찰을 보고 달아나다 붙잡혔다. 주머니에서 칼이 발견되자 체포돼 연행됐다. 경찰은 어떤 무력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시민 카메라와 목격자들의 진술은 다르다. 카메라에 담긴 프레디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경찰관들에게 질질 끌려갔다. 한 목격자는 뉴욕타임스에 “경찰이 프레디의 등 위에 올라탔고 프레디의 다리는 뒤틀렸다”고 말했다. 경찰 승합차에 태워질 때까지만 해도 프레디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승합차 밖으로 나왔을 때는 말은커녕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프레디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일주일 뒤인 19일 사망했다. 부검 결과 직접 사인은 척추 손상. 프레디의 변호인은 “목 부위 척추 80%가 골절됐다”고 말했다. 프레디의 척추가 부러진 경위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관련 경찰 6명은 유급 직무정지 상태다.

 볼티모어는 분노하고 있다. 시민 수백 명은 21일 볼티모어 경찰서에서 프레디가 체포된 현장까지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흑인들의 목숨도 중요하다” “프레디를 위해 정의를!”이라는 외침이 밤 늦게까지 울려퍼졌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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