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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사복"을 기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금단의 시대, 혹은 늘 비상한 상황으로 규정되어온·이땅의 대학가에 새봄과 함께 꽃소식이 한창이다. 이름하여「자율화」의 학원이 가꾸어진다는 이야기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라 아니할수 없다.
그러나 아직은 즐거워만 할때가 아니다. 지금의 자율화는 그저 꽃모종에 불과할 뿐 앞으로 만개의 보람으로 수많은 결실을 보아야만이 진정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자칫 성장이 정지되거나 꽃은 피웠으되 비바람의 시샘을 받거나 하여 알찬 영글음에 이르지 못한다면 이는 차라리 아픔만 더하는 셈이다. 지향이 곧바른 현재진행만이 확실한 미래를 보장함은 순이며 진이다.
꽃다운 꽃일수록 피어나는 진통은 크고 시간도 길다. 조급히 열매를 얻고자 꽃에 부채질이나 하는 어리석은 조장은 금물이다. 우를 되풀이하지 않음이 현이듯 현우의 분간은 명료하다.
사전적 의미의 자율은 타자의 위혁이나 권세·규칙등에 구속됨이 없이 스스로의 행동을 주재함이다. 그런데 이 율은 본시 상고 황제시에 대를 갈라 구멍을 뚫어 만든 통이란 악기의 이름이다. 이 통의 장단에 따라 소리의 청탁, 고저가 분별됨으로써 모든 악기는 이 율의 소리에 준하여 제작, 사용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율이 악기의 전형이라는 연고로 법 혹은 법전의 뜻을 취하게 되고 율시라 하여 시체로서도 전의된다. 이렇듯 자율은 자신을 법삼아 제소리를 낸다 함이니 예악을 아우르는 취의를 지닌 셈이다.
바깥을 밝힘이 예라면 안을 다스림은 락이다. 안팎을 밝히고 다스리는 자를 일러 선비라 한다. 그리하여 선비수양의 시종이 이 예악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작금 예악이 없는 선비사회, 타율에 젖은 대학사회라는 오명은 누구의 소행에 의했든 간에 깨끗이 씻어져야한다.
만득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별나듯 어렵사리 얻은 대학의 자율도 그렇게 가꾸어야 할 것이다. 대학마다 명덕을 밝히고 국민을 새롭게 하며 지선에 머무름으로써 율율한 모습을 보여야한다.
갑자년의 사화 있은지 여덟번의 회갑을 맞은 금년이 갑자사복의 해가 되도록 선비의 마음마다 뜻이 통해야겠다. 한종태<경남대·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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