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사제 2천명이 순례|김대건신부 유해모신「미리내 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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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한·바오로」2세 교황의 방한을 온 국민이 기쁨으로 맞이하는 가운데도 더욱 큰 기쁨과 감격으로 설레는 마을이 있다. 경기도안성군 양성면미산리속칭 미리내-.
교황방한을 계기로 「성인」의 자리에 올려지는 1백3위 한국천주교 순교자의 대표적인 김대건신부의 유해를 모시고 그 피보다도 진한 신앙의 아들들이 되기를 기약하며 25가구의 천주교신자들이 1백80여년을 지켜오는 「믿음의 요새」「한국의 카타콤베」다. 『교황님의 은총으로 한을 품고 눈감으신 할아버님의 영혼이 이제야 지하에서 고이 잠드실것 같습니다.』
1846년 새남터형장에서 순교한 김대건신부의 유해를 밤중에 몰래 지게에 지고 이깊은 산골마을에 옮겨 안장했던 이민식소년(당시17세·1920년 92세로 사망) 의 종손자 이순교씨(68) 는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붉힌다.
교황은 당초 이 한국천주교의 성지를 직접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워낙 빠듯한 일정 때문에 중간에 취소됐다.
그러나 교황의 뒤를 따라 입국한 세계 여러나라의 천주교 교역자·교인들이 5일부터 7일까지 사흘동안 2천여명이나 이 성지를 순례차 찾는다.
5일하오1시30분 김대건신부와 함께 순교한「베르뉘」주교의 후손을 포함한 프랑스의 주교·신부·신자등 2백여명이 참배하는 것을 시작으로 7일상오에는 미주지역서 온 1천3백여명, 하오에는 일본의 천주교 사제단·교인 3백여명이 줄이어 이곳을 순례하게 된다.
미리내는 이제 한국천주교의 성지에서 세계천주교의 성지가 됐다. 연초부터 성지단장에 바빴던 마을주민들은 세계교인들의 잇단 발길에 그동안 노고도 잊고 기쁨과 감격에 넘쳐있다.
경기도와 안성군에서도 15억원을 들여 양성면에서 미리내성지에 이르는 2차선9·5km도로를 포장하고 3천여 그루의 가로수를 심는등 「성지로 가는길」은 말끔하게 단장됐다.
그러나 미리내가 이처럼 거룩한 땅일 수 있는 것은 목숨과 바꾸어 신앙을 지킨 초기 한국교회의 순결한 영혼들이 이곳에서 그들의 신앙을 키우고 증거했기때문. 이곳에 처음 마을이 이루어진 것은 1801년 신유박해때. 해발6백15m의 쌍룡산과 5백10m의 천덕산 사이 깊은 골짜기로 박해를 피해 전국에서 천주교인들이 모여들었다. 교인들은 화전을 일궈 생계를 이으며 더욱 굳게 신앙을 지켰다.
마을은 한때 l백여가구까지 이르렀으나 박해가 늦춰진 뒤, 특히 해방이후 줄어 현재는 25가구.
이곳에 한국인 최초의 신부 성안드레아 김대건의 유해가 안장된 것은 1846년9월26일 밤이다. 김신부가 처형 당한지 10일만에 l7세된 열혈교인 이민식 소년이 지게로 져다 마을에서 8백m쯤 떨어진 산언덕에 마을주민들의 찬송 속에 묻었다.
김신부는 새남터형장에서 순교하며 『주여, 이 가련한 백성을 버리지 마시옵고 아무것도 모르고 저지르는 죄를 용서하소서』하고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고 전한다. 1910년 마을엔 성당이 섰고 마을에서 김신부의 묘소에 이르는 8백m의「성자의 길」은 주민들의 신앙심을 다지는 기도와 사색의 오솔길이 돼왔다. 해방 후엔 국내교인들의 참배가 해마다 늘어 근래는 연간 7만여명이 순례하고있다. 이제 그길을 세계의 천주교인들이 걸으며「수난과 영광의 기독신앙」을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김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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