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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음식] 인종차별 넘은 … ‘치느님’은 사랑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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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헬프’에서 치킨은 백인과 흑인의 벽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흑인 가정부 미니가 백인 주인 셀리아를 위해 닭을 튀겨낸다. 셀리아는 다른 백인 주인과 달리 미니와 마주 앉아 닭다리를 맛있게 먹는다.

전화 한 통이면 집이나 회사, 심지어 한강공원까지. 장소 불문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요리가 치킨입니다. 기름에 튀겨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데다 튀김 특유의 고소한 맛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죠. 영화 ‘헬프’에서도 치킨은 백인과 흑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흑인과 백인이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 금기였던 1960년대 미국 잭슨에서 백인 셀리아는 흑인 가정부 미니와 함께 주방에서 닭다리를 맛있게 먹으며 인종차별의 벽을 무너뜨립니다.

영화 배경인 1960년대 백인 주인과 흑인 가정부가 함께한 음식
당시엔 기름 귀해 팬에 튀기는 팬프라잉, 현재는 딥프라잉 대세
한국 치킨 효시는 77년 신세계 '림스치킨'...양념치킨은 81년에

#1 백인 주인 힐리의 화장실을 썼다는 황당한 이유로 쫓겨난 흑인 가정부 미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힐리의 험담에 미니는 동네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 이때 백인 셀리아가 미니를 가정부로 고용한다. 지방 출신인 셀리아는 백인 여성들의 사교 모임에 끼지 못해 미니에 대한 얘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셀리아는 미니에게 남편이 없는 시간에 와 달라는 조건을 단다. 미니는 요리에 서툰 셀리아를 위해 요리하는데 이 중 하나가 치킨이다. 자신의 아이와 집안일은 맡기면서도 흑인을 세균 보듯 했던 다른 백인들과 달리 셀리아는 미니를 거리낌 없이 대한다.

미니: 무슨 요리를 할 줄 알죠?
셀리아: 옥수수빵은 만들 줄 알아요. 삶은 감자랑. 옥수수죽도.
미니: 요리할 때 없어서 안 될 필수품은 이거예요. 병 마요네즈에 맞먹는 발명품이죠. 머리에 껌이 붙었거나 문 경첩이 뻑뻑할 때도 크리스코죠.
셀리아: 예쁘네요. 설탕 파우더 같네.
미니: 다크서클이 심할 때나 남편 발에 각질이 심할 때도. 크리스코예요. 하지만 닭 튀길 때 제일 좋죠. 닭을 튀길 땐 왠지 좀 살맛이 나요. 적어도 나는요. 난 튀긴 닭이 정말 좋아요. (닭과 튀김용 가루가 든 봉투를 건내며) 이제 흔들어요.
셀리아: 이거 너무너무 재밌네요.
미니: 그만해요. 살아있는 닭도 죽겠네 (봉투를 열며) 봐요 죽었잖아요.
셀리아: (미니가 있는 주방으로 치킨을 들고 오며) 여기 있었군요. 배고파 죽겠네. 정말 맛있겠다.
미니: 이미 말했듯이 아씨는 식당에서 드세요. 그래야 돼요. 접시 옮겨 드리죠.
셀리아: 난 여기가 좋아요, 미니.
미니: (닭을 맛있게 먹는 셀리아를 바라보며) 왜요
셀리아: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미니: 귀한 사모님이 무슨 그런 말씀을…. 그보다 만약 바깥 분한테 들키면 난 총에 맞아 이 비싼 마루 위에 쓰러져 버릴 거예요. 빨리 말씀드려요. 이 요리, 의심 않겠어요?
셀리아: 맞아요. 좀 태우지 그랬어요?
미니: (정색하며) 난 닭 안 태워요.

영화 헬프(2011년 상영)는 1963년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영화 속에서 잭슨 지역 백인 여성들의 모습은 똑같다. 모두 어린 나이에 결혼해 출산하고, 아이는 흑인 가정부에게 맡긴다. 육아뿐 아니다. 집안 살림까지 모두 맡긴다. 그러면서도 수시로 가정부를 의심하고 대놓고 무시한다. 작가를 꿈꾸는 스키터는 이러한 친구들의 모습이 잘못됐다 생각하고 흑인 가정부들의 솔직한 모습을 담은 책을 준비한다. 그러나 흑인 차별을 입 밖에 꺼내는 것 자체가 금기였던 분위기 때문에 흑인 가정부들은 스키터의 제안을 거절한다. 스키터는 친구의 집에서 만난 흑인 가정부 미니와 에이블린을 설득해 마침내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영화에 나오는 50년 전 미국은 흑인과 백인이 함께 살면서도 마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하다. 교회도 같이 갈 수 없었고, 식기나 그릇, 화장실조차 함께 쓸 수 없다. 백인은 흑인을 ‘그저 돈밖에 모르는’ 존재라고 깎아내린다. 대부분의 백인과 흑인은 이러한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미니는 자신의 큰딸이 가정부로 첫 출근하는 날 “주인에게 절대 저항하지 마라.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해라’라고 가르친다. 영화에서 평생 섞이지 못할 것 같은 백인과 흑인이 연결되는 계기가 바로 ‘치킨’이다. 시골 출신의 백인 셀리아의 집에서 일하게 된 미니가 치킨을 튀겨 셀리아에게 준다. 혼자 따로 먹을 줄 알았던 셀리아는 그릇째 들고 주방에 와 미니와 함께 치킨을 먹는다. 셀리아가 치킨을 먹을 때 나는 ‘바사삭’ 소리는 마치 백인과 흑인의 벽을 무너뜨리는 기분이 들 만큼 통쾌하다.

 영화 속 치킨은 요즘의 치킨과는 튀기는 방식이 다르다. 임피리얼팰리스호텔 카페 아미가의 최청집 조리장은 “영화에서는 당시 기름이 흔하지 않았던 시대상을 반영해 쇼트닝(제과·제빵에 사용하는 반고체 상태의 유지 제품)과 비슷한 유지를 사용해 팬프라이로 치킨을 튀겼다”고 설명했다. 팬프라이는 팬에 적은 양의 기름을 두르고 지지는 것이다. 요즘처럼 팬에 기름을 넉넉히 넣어 튀겨내는 것은 딥프라이다. 과거엔 기름이 부족해 대부분 팬프라이 방식으로 튀김 요리를 했지만 기름이 풍족해지면서 딥프라이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최 조리장은 “딥프라이는 기름에 넣었다 건져내기만 하면 돼 조리법이 간편하지만 팬프라이는 요리사의 기술이 필요하다. 90년대 이후 기름이 풍족해지면서 대부분 튀김요리는 딥프라이 방식으로 조리한다”고 덧붙였다. 팬프라이 방식으로 조리할 땐 속까지 고루 익을 수 있도록 앞뒤 면을 고루 뒤집어줘야 한다.

 치킨의 주재료인 닭은 영화의 배경인 60년대 국내에서 귀한 음식이었다. ‘사위에게 암탉을 잡아 대접한다’고 할 만큼 대접을 받았다. 조리법은 물에 넣어 푹 삶아낸 백숙 정도였다. 61년 명동에 문을 연 명동영양쎈타의 전기구이 통닭은 획기적인 요리였다. 70년대엔 기술의 발달로 닭을 사육하는 농가가 크게 늘고 식용유가 출시되면서 기름에 튀겨낸 치킨이 등장했다. 경기도 수원과 의정부의 치킨골목도 이때 생겼다. 지금의 치킨과 같은 형태가 나온 건 77년이다. 신세계백화점에 문을 연 림스치킨은 통닭이 아닌 조각 낸 닭을 기름에 튀겨냈다. 이후 81년 페리카나가 고추장으로 만든 소스에 튀긴 닭을 버무린 양념치킨을 내놨다. 이후 간장치킨, 구운 치킨 등 다양한 조리방식의 치킨이 선보이며 치킨의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도 가장 인기 있는 건 여전히 프라이드 치킨이다. 요리연구가 문인영씨는 “치킨을 튀길 때 두꺼운 부위는 속까지 잘 익지 않기 쉬우므로 포크로 닭을 찔러 구멍을 내면 기름이 안까지 돌아가 고루 익는다”고 설명했다. 튀김옷 반죽을 만들 땐 파마산가루와 후춧가루를 함께 넣어주면 시중에서 파는 치킨에서 나는 감칠맛이 난다.

 기름기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좋아하는 로스트 치킨(오븐에 굽는 치킨). 로스트 치킨을 맛있게 만들려면 스테인리스로 된 작은 볼에 물을 담아 오븐에 함께 넣어주면 좋다. 식감이 부드러워진다. 이때도 닭에 구멍을 내줘야 한다. 처음에는 180도의 낮은 온도에서 익히고 닭이 거의 다 익은 후에는 물이 담긴 그릇을 뺀다. 그리고 나서 표면에 오일을 발라 200~220℃로 온도를 높힌 후 10~15분 정도 더 굽는다. 이렇게 하면 속은 촉촉하고 겉은 바삭하게 만들 수 있다.

 다이어트할 때 많이 먹는 닭가슴살은 퍽퍽한 식감 때문에 먹기 힘들다는 사람이 많다. 닭가슴살을 프라이팬이나 냄비 위에 올린 후 물을 조금 넣고 뚜껑을 닫아 익히면 빨리 익을 뿐 아니라 식감이 촉촉해져서 먹기가 조금은 편해진다.

영화 헬프에서 나온 치킨을 임피리얼팰리스호텔 카페 아미가의 최청집 조리장이 재연한 것. 팬에 닭이 3분의 2 정도 잠길 정도로 기름을 넣고 앞뒤로 지져서 구워 내는 팬프라이 조리법으로 요리했다.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엔 기름이 귀해 팬프라이로 튀김 요리를 했기 때문이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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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이야기

엄마가 만드는 치킨카레
실은 할머니의 요리란다

음식으로 누군가를 기억하게 하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치킨을 떠올릴 때마다 제 어머니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머니는 “카레는 피를 깨끗하게 하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은 카레를 먹어야 된다”며 카레 요리를 자주 해주셨는데, 거기에 치킨과 야채를 정말 듬뿍 넣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치킨이나 야채를 잘 먹지 않아 카레로 살짝 포장하셨던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사내 녀석 둘을 키우고 있는 제가 가끔 카레를 만들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랍니다.

 어느날 미국 과학 논문 사이트인 ‘유레칼러트’를 보니 ‘당신의 기억을 맵게하라’(Spice up your memory)는 제목으로 카레가 소개됐는데, 카레가 아이들의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효능까지 있다고 되어 있더라구요. 그 이후 저는 더욱 아이들의 영양식으로 치킨카레를 만들게 됐지요.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 양파·피망·호박을 골라 한입 크기로 썰어 올리브오일에 살짝 볶은 후, 우유·소금·후추에 재워 냉장고에서 숙성시킨 닭고기와 함께 매콤한 카레 파우더를 한두 스푼 솔솔 뿌려 볶아주면 아이들은 제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줍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늦게 돌아온 아이들이 지쳤을 땐 치킨카레를 만드는 제 손이 더욱 바빠지지요. 살살 볶은 찬밥이나 우동면에 치킨카레를 곁들이면 훌륭한 영양식이 되더라구요. 서양 사람들에겐 닭고기 스프가 어린 날을 기억하게 하듯 제 아이들은 나중에 치킨카레로 엄마를 기억해 주지 않을까 합니다. 김지현(39·대치동)

▶서울의 치킨 맛집

서울에서 유명한 치킨 맛집 3곳을 소개합니다. 레스토랑 가이드북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 더플라자 허성구 총주방장, 롯데호텔서울 무궁화 천덕상 조리장의 추천을 받아 중복되는 3곳을 추렸습니다.

[반포 치킨]
“마늘 치킨의 원조로 꼽히는 곳
생닭에 마늘을 넣고 구워 마늘의 향과 맛이 진하게 난다”

○ 특징: 4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오래된 맛집이다. 내부는 80년대 호프집같이 허름하면서 소박한 분위기다. 영계를 전기구이로 구워 작고 식감이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다만 마늘의 맛이 강해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 가격: 마늘치킨 1만6000원  
○ 영업 시간: 오전 10시~오후 11시30분
○ 전화번호: 02-599-2825
○ 주소: 서초구 신반포로 38(반포동 1050) 반포상가 J동 21호
○ 주차: 건물 뒷길 주차

[양재닭집]
“부암동 통닭집 ‘계열사’, 고려대 앞 ‘삼통치킨’과 함께
전국 3대 통닭집으로 유명하다”

○ 특징: 양재닭집이라는 이름보다 양재통닭으로 더 유명하다. 메뉴도 치킨(통닭) 하나뿐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옛날식 통닭의 맛을 제대로 살렸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양까지 푸짐하다. 사람이 몰리는 저녁 시간에는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로 인기다.
○ 가격: 치킨 1만3000원
○ 영업 시간: 오전 9시~자정(주말엔 11시까지)
○ 전화번호: 02-572-1741
○ 주소: 서초구 남부순환로356길 15(양재1동 1-7) 양재종합시장 상가 지하 1층
○ 주차: 불가

[계열사]
“주말 저녁엔 입구에 이름을 적고
최소 30분 정도는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

○ 특징: 맛집 프로그램에 여러 번 소개된 대표적인 치킨 맛집이다. 부암동 지네골목의 수많은 닭집 중에서도 유독 줄이 길게 늘어서는 곳이다. 메뉴는 치킨뿐이며 치킨을 시키면 튀긴 감자도 함께 준다. 주문은 한 번에 해야하며 추가 주문은 받지 않는다.
○ 가격: 후라이드 치킨 2만원
○ 영업 시간: 낮 12시~오후 11시30분(월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391-3566
○ 주소: 종로구 백석동길 7(부암동 258-3)
○ 주차: 불가

▶독자님의 사연을 보내주시면 선물을 드립니다

마티니에 얽힌 추억이나
나만의 레시피 보내주세요.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오렌지 요거트 케이크’를 선물로 드립니다. ‘이야기가 있는 음식’ 다음 음식은 영화 ‘킹스맨’에 나왔던 마티니입니다. 나만의 마티니 레시피나 마티니에 얽힌 이야기를 이름·나이와 함께 적어 4월 28일까지 강남통신 페이스북에 메시지로 남겨주시거나 1661-2361로 문자 보내주세요. 정보이용료는 중앙일보가 부담합니다. 지면에 소개된 독자 1명에겐 쉬폰 케이크에 플레인 요거트를 곁들여 상쾌한 맛과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그랜드 하얏트서울 ‘더 델리’의 오렌지요거트 케이크(5만5000원 상당·1일 전 전화 예약 후 수령)를 선물로 드립니다.

글=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v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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