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에 3백20만원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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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전매업자들이 차지하는 엄청난 프리미엄을 정부의 서민주택 자금으로 흡수한다는 취지의 채권입찰제가 오히려 투기를 조장하고 아파트 값을 춤추게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분양된 일부 아파트의 채권입찰액이 분양가를 훨씬 뛰어넘는 기현상을 보인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34평형 아파트의 분양가가 3천5백여만원인데 여기에 4천6백만원 이상의 채권이 입찰됐다니 분양가보다 무려 1천만원 이상이 더 높은 액수이다.
이것을 분양면적 평당가격으로 환산하면 2백40만원에 가깝고 더구나 전용면적으로 따지면 평당 3백20만원을 넘는 액수이다.
주택건축 업자들에 의하면 단독주택을 지을 경우 건축자재를 모두 수입외제만을 써서 지어도 평당1백8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하니 아파트의 터무니 없는 값은 합리적인 사고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처럼 엄청나게 치솟는 채권입찰액은 투기를 노리는 이른바 복부인과 이들을 충동질하는 복덕방의 농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엄청난 액수의 웃돈을 주고 국민주택 규모 (전용면적 25.7평미만)의 아파트를 살 실수요자란 생각할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아파트 투기꾼들을 위한 주택이 되고 말았다. 터무니 없이 높은 채권액수를 써넣어 신규분양 아파트 값을 올림으로써 상대적으로 기존 아파트 거래를 활성화하고 이에 따른 차액과 수수료 수입을 올리자는 속셈에서 조작하는 복덕방과 복부인의 농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모든 부동산의 싯가를 부채질하게 되고 따라서 집없는 서민들의 내집 마련의 꿈은 더욱 멀어지게 한다. 이러한 투기붐은 또 경제적인 영향 이외에도 근면과 성실을 유일한 재산으로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으로 하여금 물량적 한탕주의의 위력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사회병리적인 영향조차도 초래하게 된다.
더군다나 이같은 열띤 경쟁심리에 휩쓸려 무리한 채권액을 써 넣은 사람들이 뒷돈을 댈 수 없어 중도금을 내지 못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부작용이 심하고, 아파트 건설업체는 자금난에 허덕이는 사례까지 나온다니 그 폐해의 범위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아파트 1평의 값이 3백만원을 넘는다는 현실은 돈에 대한 가치평가에 혼란을 가져올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의 가치관과 질서의 혼란으로까지 파급될 염려도 없지 않다.
이처럼 정부가 채택한 채권입찰제가 당초 취지대로 아파트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실수요자의 부담만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도 실시 1년동안에 드러난 결론이다. 물론 서민주택 자금의 마련이라는 명분이 있기는 하나 전용면적 25평정도의 국민주택 규모에까지 엄청난 추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음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투기를 없애기 위한 이 제도가 날이 갈수록 돈 많고 정보에 밝은 투기꾼과 부동산 업자에게만 오히려 유리하다면 이 제도는 역기능 쪽으로 기울고 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당국은 이 현상을 강건너 불보듯 앉아서 보고만 있을 것이 아니다. 모순이 드러난 이상 과감한 시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앞장서서 투기를 조장하는 셈이 돼버린 채권입찰제 보다는 정상적인 조세수단으로 투기꾼의 포리를 다스리는 한편 값 싼 공공주택의 보급을 확대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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