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광고제소에 맞고소 사태|공정거래실에 비친 기업 광고전 시시비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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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기업들의 치열한 광고전에 심판 격인 공정거래실이 몸살이 날 지경이다. 기업마다 제품표시나 광고가 눈에 띄게 신중해 지면서 남의 광고에도 무척 신경을 쓴다. 경쟁회사 광고에 허위·과장표현이 없나 해서다.
시비 거리만 생기면 공정거래실을 찾아가 제소를 하고, 연이어 피 제소업체도 뒤질세라 맞 제소사태로 번진다.
작년 한햇 동안 공정거래실에 이 같은 표시·광고문제로 접수된 제소건수는 모두 64건. 이중에 24건이 「이유있다」는 판결에 따라 시정조치를 취했지만 60%에 해당하는 39건이「허위·과장광고」가 아니라는 기각판정을 받았다.
고발정신이 왕성해진 건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때로는 억지·생떼인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 공정거래실 관계자들의 실토다.
이처럼 제소러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공정거래실이 자체기능을 너무 과장광고(?)한 탓도 없지 않다. 「최고·최초·유일」등의 최상급 표현을 강력히 규제하고 있는 데다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힘 자랑을 기회 있을 때마다 홍보해왔기 때문이다.
역시「맞고소」전이 가장 골치 거리다. 작년 한햇 동안 굵직한 맞고소 전만 따져서 7건이었다.
첫 사건은 현대자동차대 대우자동차 전. 현대가 먼저 대우를 상대로 제소했다. 대우 측이 「꽁무니가 짧은 포니2의 안전도가 낮다」는 사실무근한 광고지를 뿌렸다는 것이다. 대우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현대의 광고 중에 생산대수와 시장점유율 등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결과는 양쪽 모두 시정명령을 받고 신문에 사과광고를 내야했다.
이어서 술 싸움이 벌어졌다. 백화양조가 먼저 경주법주를 상대로「유일하게 1백% 쌀로 만든 술」이라는 광고가 사실과 다르다고 제소했다. 민속촌이나 부산산성막걸리도 1백% 쌀로 만든다는 반증을 제시했다.
경고처분을 받은 경주법주 측이 반격에 나서「쌀의 하얀 속살로 빚은 우리의 전통 주」는 과장광고라고 주장했으나 그 정도의 표현은 괜찮다는 공정거래실의 판정으로 판정패를 당한 셈.
쌍룡제지와 유한킴벌리의 휴지싸움. Q마크를 획득한 것을 마치 최고품질의 보증처럼 광고한 것에 대해 시정명령을 받은 쌍룡은 이내 유한킴벌리를 물고 들어가 광고문구중에 「최고제품」이라는 표현 역시 잘못된 것이 아니냐며 따졌다.
삼익 악기와 영창 악기의 싸움은 대표적으로 어처구니없는 케이스.
영창 악기가 삼익 악기를 상대로「국제품질 최고상을 수상했다」는 광고를 놓고 시비를 걸자 삼익 측도 영창의 「국제기술대상수상」광고는 잘못되지 않았느냐고 맞섰다. 공정거래실이 조사한 결과 양쪽 상 모두 참가비만 내면 거저 주는 참가 상이었다는 것이 밝혀져 함께 망신만 당했다.
해묵은 냉장고 싸움 역시 금성사와 대우전자사이에 벌어졌으나 서로「주의」와 「경고」 조치를 받고 싱겁게 끝났다. 2개월 동안의 광고를 모아서 10여가지 씩 허위·과장 광고를 지적했지만 대부분「단숨에 얼음이 언다고 했는데 왜 단 숨이냐」는 식의 궁색한 지적들이었다.
가장 호되게 얻어맞은 케이스는 잇솔 싸움. 잇솔 업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해온 럭키가 잇솔 케이스에 「라운드·커팅」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태평양화학 쪽의 제소로 시정명령뿐만 아니라 이미 판매한 제품의 반품에도 응하라는 엄중한 조치를 받았다. 가만히 있을 리 없는 럭키는 라운드 커팅이 안된 것은 태평양 역시 마찬가지라며 맞고소, 조사결과 라운드 커팅은 했으나 불량률이 4O%임이 밝혀져 경고조치를 받았다.
금년 들어 진행증인 맞고소는 금성과 대우 측의 개인용 컴퓨터 싸움. 지난4월초 대우 측이 먼저 금성을 걸어 대우제품을 간접적으로 비방하는 내용의 비교 광고를 했다고 공정거래실에 제소했다.
여기에 금성 측도 대우광고야 말로 허위·과장광고라고 주장하며 광고 문구의 대부분을 열거해 보였다.
내용인즉 『대우가 개인용 컴퓨터의 새 역사를 열었다는데 그렇다면 그전에 만들어진 제품들은 모두 엉터리라는 말이냐』는 등등.
이 같은 맞고소는 해당기업이 드러내고 직접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리점이나 제3자의 이름으로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고소내용을 보면 관계규칙들을 훤히 꿰뚫고 있어 『이러 이러한 광고는 무슨무슨 조항에 위배되지 않느냐』고 따지고 든다.
기업광고도 자제해야지 만 공정거래실이 마련한 표시·광고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한 점도 문제다.
광고란 본질적으로 다소 과장되게 마련인데 최고·최초 등의 표현까지 일일이 규제하고 있으니 시비 거리가 많아질 수밖에.
이러다간 극장에 붙어있는 영화간판들까지 허위·과장광고로 모조리 뜯어내야 할 판이다. 골치를 썩이고 있는 공정거래실은 스스로의 덫에 걸려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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