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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2월15일.
아군이 적에게 포위당한채 사흘동안이나 필사적으로 싸웠던 지평리의 처절한 싸움터에서공산군들은 마침내 후퇴하기 시작했다고 「맥아더」사령부에서 알려왔다.
「맥아더」장군은 대통령에게 자기는 만주에 대규모적인 폭격을 가해 북한 북쪽에 있는 적의 후방기지를 섬멸해서 다시는 공산도배들이 힘을 못쓰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국가를 통일하고 우리의 영토를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완전히 회복하여 한반도안에 어디나 분단된 곳이 없도록 한다』는 전쟁목표를 뚜렷이 밝힌 각서를 장면국무총리에게 주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이 각서를 워싱턴의 우리대사관에서 활용할수 있도록 사본을 만들게 해자신이 급히 쓴 편지와 함께 외교행낭편으로 보냈다.
이 서한에서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완전통일 이외에는 어떤 것도 수락할수 없다는 자신의입장을 천명하였다.
『우리의 입장이 그들의 입장이고 우리의 전쟁이 그들의 전쟁이기 때문에 정당한 생각을가진 국제연합의 모든 회원국가들은 우리가 목표로 삼아 싸우고 있는 원칙을 튼튼하게 지켜나갈 것으로 우리는 절대 확신합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키는체 하면서 사실은 자유세계의 적을 지지하고 있는 국가들로부터 회원국들이 영향을 받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될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발표할 특별담화를 준비하였다.
『우리의 전쟁경비는 지금 국제연합의 우방각국에서 보내오는 원조자금으로 충당하고 있으나 우방의 도움에 의뢰하지 않고 우리의 힘을 다해 우리자신의 전비를 부담해야 떳떳한 국민이 되는 것이다.
남의 도움을 가지고 우리의 국권과 민권을 보호할수는 결코 없는 것이니 세금을 완납함으로써 이 전쟁에 승리하고 하루 빨리 우리나라의 통일을 앞당겨 완수하도록 해야한다』는 내용이다.
대통령은 우리국민이 악착같은 일본의 수탈정책에 40년동안이나 착취를 당한데다 군정하의 혼란에 뒤이어 공산군의 침략으로 전쟁의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전비부담이라는 명목의세금을 낼수없는 실정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외세의 간섭에 좌우되지않는 자주독립국임을 깨닫게 하기위해 담화를 발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이같이 어려운 처지에서 고통을 받고있는 국민들로부터 과중한 세금을 받아내는일은 모기다리에서 피릍 뽑는 것보다 더한 짓이라고 말했다.
지금 일선전투에서는 매일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으며 시설은 대량 파괴되고 정부업무는 끝이 없는데다 불운한 전재민들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속에서 고생하고 있다.
1백50만명의 굶주리고 집없는 전쟁희생자들이 들끓고 있는 부산은 세계에서 가장 비참한 빈민가로 변해있고 많은 가족들이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를 전쟁터에서 잃고 형은 군대로 징병되어 나간채 생계가 어려운 형편이다.
엄마 아빠를 애타게 부르며 헤매고 있는 수천명의 가엾은 고아들이 거리로 몰려있고 후방에서는 불구가 되어 기분이 격앙되어있는 상이군경들과 전쟁미망인들이 절망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처참한 지옥의 아비규환과 혼란속에서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생존과 자유를 위해 고심하고 있는 대통령에게 ECA의 관리들은 정부예산의 균형을 맞추고 인플레를 억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가혹했던 일본의 식민지수탈정책의 뒤를 이어 8개월간이나 전쟁중에 있는 나라가 어떻게 세금을 더 거둘수 있단 말인가?
이와같이 허다한 대내·대외의 얽히고 설킨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주야로 쉴새 없이 일하고 있는 대통령이 전혀 피로의 기색을 보이지않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우리민족은 시련과 고통이 크면 클수록 더욱 강해지며 결코 좌절하지 않는 불굴의 투지를 지닌 민족이라고 대통령은 말했다.
대통령의 구술을 계속해서 받으며 타자를 해나가는 나의 손끝은 모두 부르트고 눈은 너무나 피로해서 뜰수가 없다. 나는 염려말고 쉬도록하라는 대통령의 권유로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
독립운동중 가장 힘든 고비였던 1941년, 대통령의 『일본내막기』의 원고를 세차례나 타자 했을 때도 나는 손끝이 부르트고 눈이 진무른 경험이 있다.
그때 대통령은 나를 워싱턴의 포토미크강변으로 데리고 가 『아리랑』의 노래를 부르며 위로해 주었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청천하늘엔 별들도 많고 우리네 가슴속엔 시름도 많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오다가다가 만난 「님」이지만 살아서나 죽어서나 못 잊겠네.』
(필자주‥이 끝귀절은 대통령이 나를 위해 지어서 넣은 가사다.)
이 노래가 생각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 <제1부 끝>
※나의 비망록은 일단 여기서 제1부의 매듭을 짓고, 일기자료를 재정리하는 대로 곧 제2부를 집필코자 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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