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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 보안관에 사살당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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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사고가 발생한 아메리칸에어라인(AA)에 탔던 승객들이 7일 검색을 받기 위해 머리에 손을 얹은 채 트랩으로 내려오고 있다. 특수 수색팀과 폭발물 탐색견까지 동원해 검색하는 바람에 이륙이 일곱 시간 늦어졌다. [마이애미 AP=뉴시스]

미국 항공기 탑승객이 기내 보안관의 총에 맞아 숨졌다. 마이애미 국제공항에서 7일 오후 아메리칸 항공 보잉 757 여객기에 탑승했던 미국인 승객 리고베르토 알파이자(44)가 테러범으로 오인돼 총격을 받았다. 알파이자는 조울증 때문에 이상한 행동을 했지만 테러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9.11 테러 이후 강화된 항공기 보안규정에 따라 배치된 기내 보안관이 승객에게 총을 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격 상황=알파이자는 아내와 함께 페루에서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이애미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다. 그는 집이 있는 올랜도로 가는 여객기에 탑승했다가 이륙 8분 전인 이날 오후 2시쯤 갑자기 비행기 뒷좌석에서 일어나 앞쪽으로 뛰어나갔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는 "내려야 돼"라고 중얼거리며 통로를 걸어나갔고, 그의 아내가 스페인어로 "내 남편인데 조울증 환자다. 약을 먹지 않았다. 도와 달라"고 소리치며 뒤따라갔다.

승객으로 위장해 탑승한 기내 보안관이 그를 잡으러 따라갔다. 보안 당국에 따르면 알파이자는 배낭을 끌어안고 "폭탄을 갖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탑승 통로를 지나 터미널 쪽으로 향하자 보안관 2명이 "꼼짝마. 엎드려"를 외쳤다. 알파이자가 배낭을 열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자 보안관들은 즉각 총격을 가했다. 알파이자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국토안보부 측은 "기내 보안관들은 승객.승무원.비행기의 안전에 위협이 될 만한 모든 행위를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알파이자에 대한 총격은 훈련 교범대로 한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목격자들은 "알파이자가 어리석은 행동을 했지만 그게 총을 맞을 이유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알파이자가 피격된 뒤 무장 경찰이 탑승객 113명을 모두 내리게 하고 기내 수색을 실시했으나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알파이자가 들고 있던 배낭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폭파했으나 폭발물은 없었다.

◆기내 보안관=9.11 이전에는 미국 전역에서 32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 비행기에 1, 2명이 탑승할 정도로 엄청나게 불어났다. 정확한 숫자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총기를 휴대하고 위협이 된다고 느끼는 모든 행위에 대해 즉각 대응하도록 훈련받았다. 가방에 손을 대지 말라고 명령했는데 손을 대면 총을 쏠 수 있다. 뉴욕 타임스는 한 치료단체의 조사를 인용해 "정신병 환자는 경찰에 총을 맞을 수 있는 확률이 정상인보다 네 배 이상 높다"고 보도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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