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육분의 륙' 고수희씨 "연극계의 빅마마 될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연극 '육분의 륙'(이해제 작.연출)은 요즘 대학로에서 주목받는 작품이다. 영화배우 유지태가 제작하고 직접 출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커튼 콜 땐 당당한(?) 체구의 한 여인에게 가장 큰 박수가 쏟아진다. 연극 배우 고수희(29)씨다. 대학교수로 분한 그녀는 허영심으로 뭉친 상류층 여성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한다. "당돌하게 덤비시는데, 얼마나 용감하신지 한 번 보죠"라고 툭 던지듯 말할 땐 정말로 성질 나빠 보인다.

연극배우 고수희라면 낯설지만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인육 먹는 마녀라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듯 싶다. 그녀의 올해 행보는 만만치 않다. 영화 '분홍신' '친절한 금자씨' '너는 내 운명' 등에서 강렬한 인상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에선 아직 조연 혹은 눈에 띄는 단역에 불과하지만, 연극판에선 확실한 자기 색깔을 지닌 배우로 자리잡았다. 올 초 앙코르 공연 '청춘예찬'을 시작으로 '서쪽부두' '맨드라미꽃' '육분의 륙' 등에 연이어 출연했다. "물이 올랐다. 모든 역에서 고수희가 느껴지게끔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수희의 연기 입문은 좀 특이하다. 학교는 안양예고-대구전문대 방송연예과를 나왔다. 대학 졸업 후 그녀는 여행사, 레저 이벤트사, 아동극단을 전전했다. 오갈 데 없던 1998년 겨울, 지금은 스타로 성장했지만 당시 절친한 동료였던 박해일과 함께 대학로 극단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포스터를 붙였고, 박해일은 조명 보조였다. 그런데 하루는 박근형 연출가가 "자기가 살아온 경험을 써서 제출하라"고 숙제를 냈다. 월급 못 받고, 실컷 고생한 얘기를 시시콜콜 써서 냈더니 그걸 토대로 연기를 해보란다. 그렇게 대본도 없이 무대에 올려진 게 99년 온갖 연극상을 휩쓴, 박해일.고수희 주연의 '청춘예찬'이었다. "우연히 시작한 탓일까요. 지금도 목숨 걸 듯, 연기에 연연해 하진 않아요."

인터넷 프로필엔 키 171㎝, 체중 88㎏으로 나와 있다. 그녀는 "그건 옛날 몸무게죠. 지금은 더 나가요"라고 솔직히 말한다. "뚱뚱한 거 자체가 생활에 불편하진 않아요. 다만 '뚱뚱=둔함 혹은 억셈'이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자꾸 그런 역만 주는 게 싫죠"라고 말한다. 극에선 거칠고 심지어는 엽기적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무척 내성적이란다. 극단 유무비의 이윤정씨는 "수희 언니는 리본과 꽃무늬 캐릭터를 좋아하는, 천생 여자"라고 전했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을까. "가요계도 여성 4인조 그룹 '빅마마'가 탄생한 뒤 립싱크가 사라지고, 외모보다 가창력 있는 가수가 더 높이 평가 받잖아요. 저 역시 연극.영화계에서 그런 역할을 했으면 싶어요." 02-541-4519.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