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강 기적'은 독재 없이 불가능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명암(明暗)인 경제발전과 독재 사이의 상관 관계를 본격 진단해보는 대규모 국제학술대회가 9~10일 서울 서소문 명지빌딩 20층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소장 정성화)가 주최한다. 주제는 '박정희 시대와 한국현대사'.

박 전 대통령 시대를 재조명하는 일은 현 정부 들어서 진행되어온 각종 과거사 논쟁의 정점에 해당한다.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것은 분명한데, 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독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대개 '개발독재 불가피론'을 펴는 이들은 보수적 시각을 대변한다. 이들은 박정희 개인의 탁월한 능력과 함께 '독재 때문에' 경제발전이 가능했다고 본다. 비판자들은 개인의 능력과 관계없이 한국 경제는 성장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며 독재의 폐해를 지적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보수.진보 양 진영의 연구자들을 골고루 배치했다. 눈에 띄는 것은 양 진영의 발표자들이 서로의 단점을 헐뜯기만 했던 옛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쌍방이 각기 자기측 이론의 장점을 주장하면서도 '박정희 시대'의 전체 모습을 조망하는 방식을 취했다.

미리 배포된 발제문에서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영훈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을 "이론이나 실무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학자"라고 극찬했다. "1966년부터 13년간 매달 개최된 월간경제동향보고회와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쌍두마차로 하여 한국경제의 대질주를 진두지휘했다"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는 어느 나라건 근대로의 이행과정에서 보편적으로 경과할 수밖에 없는 절대주의와 계몽주의 시대에 해당한다. 박정희는 20세기 초부터 이어져 온 그 시대의 마지막 개명군주(開明君主.개화한 왕)였다"고 평가했다.

해외 쪽의 보수적 견해로는 미국 동서문화센터 수석 고문 조이제 박사와 기 예르메 파리정치대 명예교수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독재의 보편성'을 주장한다. 예르메 교수는 "유럽과 미국의 역사를 보아도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정치의 틀은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비스마르크의 독일, 메이지의 일본, 그리고 공산주의 소련과 프랑코의 스페인 등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조이제 박사는 '박정희 리더십=연성(軟性) 권위주의'로 규정하며 후발 산업화 과정에 필요한 절차였다고 평가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중국의 덩샤오핑도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연성 권위주의 리더십으로 경제성장을 이끈 반면, 북한은 강성(强性) 권위주의 리더십으로 국가발전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달리 김동춘(성공회대 사회학) 교수는 '박정희 시대의 민주화 운동'이란 글에서 박 정권에 대항한 민주화 운동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독재가 잘못됐다고만 비판하는 방식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이 잘한 일을 적극 내세우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획일적 안보.성장 제일주의를 이끌었다고 전제한 뒤, "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은 문화.정신의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개척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아직도 권위주의 혹은 파시즘 바이러스가 거의 모든 사회조직의 운영원리로 작동하는 사회"라며 "민주화 운동의 정신은 바로 파시즘 바이러스의 가장 중요한 해독제"라고 밝혔다. 이 밖에 김일영(성균관대).박명림(연세대).장상환(경상대).이정우(경북대).한홍구(성공회대) 교수 등이 발표와 토론에 참여한다.

배영대 기자

*** 이영훈 교수(서울대 경제학)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부터 13년간 이론이나 실무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학자로서 한국경제의 대질주를 진두지휘했다. "

*** 조이제 박사(미국 동서문화센터 수석 고문.사회학)

"1960~70년대 한국은 비스마르크의 독일과 메이지의 일본에 뒤이은 후발 산업화 모델로 볼 수 있다. "

*** 김동춘 교수(성공회대 사회학)

"유신 하의 유사(類似) 파시즘 시대에 모든 이들이 침묵할 때 마지막까지 저항한 세력은 학생.종교인 등 재야세력이었다.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