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이승만대통령(110)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더욱 빈번해진 대통령의 전선시찰로 인한 바쁜 일정과 함께 나는 시간을 다투는 외교기밀서한과 전문들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구술을 받아 타자해서 보내느라고 일기를 쓸 시간이 없었다. 여러날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월11일 대통령은 하오2시반에 거행된 방위사관학교졸업식에 참석했는데 김광섭·박동진 두 비서와 여비서인 미시즈 강이 우리를 수행했다.

<전선시찰에 바빠>
이 식전에서 대통령은 『청년 여러분들은 우리조국과 민족의 영광스런 역사와 장래를 두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이 땅에 태어난 자랑스런 대장부로서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여 우리민족과 인류를 위해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반만년동안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이 강토를 지키고 번영시켜 후대에 물려주자』는 요지의 훈시를 했다.
동해안의 우리국군이 치열한 격전끝에 38선을 넘어 양양을 탈환했다.
국군의 38선돌파에 대해 캐나다와 호주는 한국군과 유엔군은 입북권한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고 지지하는 태도를 표명했다.
그러나 영국은 38선 돌파는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으며 미국은 각 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한국군의 38선이북 진격설을 부인했다.
어떠한 고난을 무릅 쓰고라도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북진하여 기필코 남북통일을 이룩해야한다는 굳은 의지를 가진 대통령의 고민은 심각하다. 이 강토에서 싸우는 군대들이 밀고 밀리는 동안 우리나라는 쑥밭이 되고 도처에서 우리국민이 겪는 수난은 더욱 비참해지고 있다.
우리는 피난민수용소를 돌아 보았는데 피난민의 반수가 폐결핵과 질병을 앓고 있어 대통령은 무척 침울하다.
전쟁을 수행하며 고생하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할 일은 많은데 나라의 재정은 바닥나고 생활고에 허덕이는 국민들로부터 새금을 거둘 수도 없는 형편이다.
더우기 약소국의 특별한 전쟁은 열강의 필요성이나 편의에 따라 처리된 것이 세계사에 너무나 흔한 일임을 잘알고 있는 대통령은 조국과 민족의 장래가 열강의 이익에 의해 희생되지 않도록 자기 한몸으로 맞서 싸우며 버티고 있다.
한국전쟁에 개입하고 있는 미국과 국제연합의 결정을 보면 우방의 어떤 지도자라 할지라도 한국을 구출하는 것이 그들의 참전 목적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군 3만명 온다>
대통령은 어떤 외국국가들이나 군대가 한국을 대신해 싸우고 희생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바라지도 않고 있다. 다만 「맥아더」장군과 더불어 이 전쟁에서 공산당음모의 세계적 목표를 때려 부수고 조국분단과 민족이산의 비극을 막는 것이 대통령의 목적이다.
아무리 급한 경우에도 일본과 자유중국의 군대가 우리나라에 상륙하는 것을 막겠다는 대통령에게 「맥아더」장군은 새로 훈련된 미군신예병력 3만명이 3월15일까지 한국전선으로 증원될 것임을 알려주었다.
2윌12일 지프를 타고 직접 전선을 돌아본 「맥아더」장군은 대통령에게 아군은 치열한 반격을 가해오고 있는 중공군을 완전히 분쇄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실은 적의 완강한 저항과 역습으로 우리국군 제5사단과 8사단, 그리고 미제2사단 38연대가 「대학살계곡」이라는 이름의 전투에서 고전을 거듭 했으며 우리측의 희생이 훨씬 더 컸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죄고 있었다.
심지어 중공군과 북괴군은 백기를 들고 항븍하는체 하면서 수류탄으로 공격해 오고 온갖 비겁한 수법으로 아군을 속이며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다고 한다. 무기부족으로 더욱 희생이 큰 우리국군을 위해 장택상·지청천 두 의원이 무기요청 국회특별사절로 동경의 연합군사령부에 파견되고 『우리에게 무기를 달라』는 군중집회와 현수막이 눈에 띄게 많아 졌다.
미국무성의 지속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굿펠로」씨를 시켜 미국의 무기를 사들인 대통령의 깊은 마음을 그 누가 해아릴 수 있었던가?
하오 3시반에 경남도청에서 대통령과 정부요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해병대 연맹에서 보내온 구호품 1천50상자의 증정식이 있었다.
미해병의 「토머스·J· 쿠수먼」장군이 증정사를 한 다음 장면국무총리와 내가 답사를 한 후 구호품을 증정받았다.
참으로 어려운 국내사정과 함께 열강들에 의해 한국전쟁의 중대한 정책결정이 이루어지려는데 대항하여 온갖 대책을 강구하며 고뇌하고 있는 대통령의 노력은 처절할 정도다.
「무초」대사가 와서 「콜린즈」장군의 말에 의하면 유엔군이 38선에 도달하기 전에 38선돌파 북진에 대한 정치지도가들의 결정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대통령은 벌떡 일어나서 자기집무실로 건너가 버렸다.

<병아리보고 위안>
대통령은 양성봉 경남지사가 가져왔던 병아리들을 들여다 보며 좁쌀을 모이로 주면서 쫓아간 나에게 『저자를 빨리 내쫓아 버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유수한 세계의 저명인사들이 대통령을 「가장 예의바른신사」라고 존경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남의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일에 간섭하는 것은 참지못하는 성격이다.
분을 참기 어려운 대통령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있는 작은 병아리들이 참으로 사랑스럽고 고맙게 느껴졌다.
농림부에서 양계를 장려하기 위해 인공부화기로 70만마리를 부화시켜 전국에 나누어 주고있는 이 병아리들이야말로 대통령의 유일한 위안이오, 기쁨인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