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에 깔린 ‘맑스 코뮤날레’ 무대 디자인이 아니었다면 같은 시간 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던 ‘하이 서울’ 콘서트 행사로 착각할 정도였다.(주최측은 마르크스를 '맑스'로 표기했다.
현란한 조명과 심장을 때리는 듯한 밴드 소리에 맞춰 목마를 탄 아이가 젊은 아빠와 함께 흥겨운 춤을 추고, 젊은 남녀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연신 손을 흔들어 댔다.
특히 밴드 천지인의 '청계천 8가' 연주 때는 모두 일어나 합창을 했다. 노래에 맞춰 노란색의 긴 머리 리드 보컬리스트가 헤드 뱅잉(머리 흔들기)을 해대고 엉거주춤 7부 바지를 입은 연주자들이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마르크스와 록 밴드의 만남-. 21세기 마르크스 이론의 혁신과 계승을 위해 '지구화 시대 마르크스의 현재성'이라는 주제로 열린 마르크스 코뮤날레 폐막 행사에서였다.
오늘의 마르크스주의의 고민은 여러 갈래로 표출된다. 변화에 따른 흐름의 새 가닥을 잡아야 하지만 그 또한 아직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대단한 열기로 시작된 이번 행사는 록 밴드 연주에 이르러 모두가 하나 되는 장면을 연출했다.
무대에는 천지인 말고도 '디스코 트럭' '바람' '레이지 본', 그리고 록 가수 최도은 등이 올랐다. 한 참석자는 공연 중간의 발언 시간에 "마르크스를 접한 이래 이렇게 즐거운 날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무대 배경 화면을 장식한 '즐거운 혁명'이 바로 그들의 지향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당연히 고통스러워야 할 '혁명과 연대'를 '즐겁게'한다는 이 같은 발상은 갈등과 모순도 포함하고 있다. 이를 기획한 이동연 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은 "록의 저항정신이 마르크스주의와 결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록 음악에서 마르크스의 이념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로커들에게 세계적 패권주의와 전쟁에 대한 반대, 기성세대에 대한 혐오 등 금기를 넘어서려는 저항정신을 찾을 수 있다는 관점에서 오늘의 결합이 이뤄졌다." 디스코 트럭의 한 멤버가 "마르크스는 모른다. 하지만 무대는 하나다"라고 외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마르크스와 록음악의 만남은 혁명적 엄숙주의에 길들여진 세대에게는 일종의 충격이었을지도 모른다. 1980년대 초 각 대학에서, 또는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터져나왔던 해방 춤을 만났을 때처럼. 이는 곧 '마르크스주의의 세대차인가, 아니면 저항문화의 확장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했다.
강내희(중앙대.영문학)교수는 이에 대해 "금기에 대한 저항의 확장이라는 측면과 감각의 쾌락화.자본주의화라는 두 가지 측면이 병존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풀이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새로운 도전이자 가능성이라는 해석이다.
사흘 동안 열린 이 행사에는 매일 5백여명, 연인원 1천5백여명이 참가해 좌석을 다 채우고 복도까지 메웠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강당 밖에는 미국과 전쟁을 비난하는 사진.만화전, 관련도서 전시회, 마르크스 캐리커처 걸개거림 등이 걸려 있었다. 주최 측 관계자는 "어느 구석에 숨어있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모두 모여든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학술행사에서는 모두 90여편의 논문이 발표되면서 중요한 쟁점을 짚었다.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유물론은 어떻게 재해석되어야 하나' '정보화 사회에서 전통적 노동가치론이나 혁명론은 유효한가' '환경.여성.평화 등 계급적 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새로운 이슈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개입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등이 대표적이었다.
김세균 집행위원장(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은 "새로운 대안이 제시된 것은 아닐지라도 마르크스주의 재해석과 관련해 등장할 수 있는 쟁점을 정리했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고 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 바로잡습니다
5월 27일자 24면 '제1회 마르크스 코뮤날레' 기사의 사진 설명에서 공연 중인 록밴드는 '천지인'이 아닌 '바람'이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