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음악에 휩싸인 '즐거운 마르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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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 25일 저녁 늦은 시간, 이화여대 이화·삼성교육문화관은 록 음악에 휩싸여 있었다. 23일부터 열린 제1회 '마르크스 코뮤날레(학술문화재)'에 참석한 3백여명의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뜨거워진 열기 속에서 격렬하게 춤을 췄다.

배경에 깔린 ‘맑스 코뮤날레’ 무대 디자인이 아니었다면 같은 시간 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던 ‘하이 서울’ 콘서트 행사로 착각할 정도였다.(주최측은 마르크스를 '맑스'로 표기했다.

현란한 조명과 심장을 때리는 듯한 밴드 소리에 맞춰 목마를 탄 아이가 젊은 아빠와 함께 흥겨운 춤을 추고, 젊은 남녀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연신 손을 흔들어 댔다.

특히 밴드 천지인의 '청계천 8가' 연주 때는 모두 일어나 합창을 했다. 노래에 맞춰 노란색의 긴 머리 리드 보컬리스트가 헤드 뱅잉(머리 흔들기)을 해대고 엉거주춤 7부 바지를 입은 연주자들이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마르크스와 록 밴드의 만남-. 21세기 마르크스 이론의 혁신과 계승을 위해 '지구화 시대 마르크스의 현재성'이라는 주제로 열린 마르크스 코뮤날레 폐막 행사에서였다.

오늘의 마르크스주의의 고민은 여러 갈래로 표출된다. 변화에 따른 흐름의 새 가닥을 잡아야 하지만 그 또한 아직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대단한 열기로 시작된 이번 행사는 록 밴드 연주에 이르러 모두가 하나 되는 장면을 연출했다.

무대에는 천지인 말고도 '디스코 트럭' '바람' '레이지 본', 그리고 록 가수 최도은 등이 올랐다. 한 참석자는 공연 중간의 발언 시간에 "마르크스를 접한 이래 이렇게 즐거운 날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무대 배경 화면을 장식한 '즐거운 혁명'이 바로 그들의 지향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당연히 고통스러워야 할 '혁명과 연대'를 '즐겁게'한다는 이 같은 발상은 갈등과 모순도 포함하고 있다. 이를 기획한 이동연 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은 "록의 저항정신이 마르크스주의와 결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록 음악에서 마르크스의 이념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로커들에게 세계적 패권주의와 전쟁에 대한 반대, 기성세대에 대한 혐오 등 금기를 넘어서려는 저항정신을 찾을 수 있다는 관점에서 오늘의 결합이 이뤄졌다." 디스코 트럭의 한 멤버가 "마르크스는 모른다. 하지만 무대는 하나다"라고 외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마르크스와 록음악의 만남은 혁명적 엄숙주의에 길들여진 세대에게는 일종의 충격이었을지도 모른다. 1980년대 초 각 대학에서, 또는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터져나왔던 해방 춤을 만났을 때처럼. 이는 곧 '마르크스주의의 세대차인가, 아니면 저항문화의 확장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했다.

강내희(중앙대.영문학)교수는 이에 대해 "금기에 대한 저항의 확장이라는 측면과 감각의 쾌락화.자본주의화라는 두 가지 측면이 병존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풀이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새로운 도전이자 가능성이라는 해석이다.

사흘 동안 열린 이 행사에는 매일 5백여명, 연인원 1천5백여명이 참가해 좌석을 다 채우고 복도까지 메웠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강당 밖에는 미국과 전쟁을 비난하는 사진.만화전, 관련도서 전시회, 마르크스 캐리커처 걸개거림 등이 걸려 있었다. 주최 측 관계자는 "어느 구석에 숨어있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모두 모여든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학술행사에서는 모두 90여편의 논문이 발표되면서 중요한 쟁점을 짚었다.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유물론은 어떻게 재해석되어야 하나' '정보화 사회에서 전통적 노동가치론이나 혁명론은 유효한가' '환경.여성.평화 등 계급적 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새로운 이슈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개입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등이 대표적이었다.

김세균 집행위원장(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은 "새로운 대안이 제시된 것은 아닐지라도 마르크스주의 재해석과 관련해 등장할 수 있는 쟁점을 정리했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고 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 바로잡습니다

5월 27일자 24면 '제1회 마르크스 코뮤날레' 기사의 사진 설명에서 공연 중인 록밴드는 '천지인'이 아닌 '바람'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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