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경영] '푸른 경쟁력'… 매출·주가를 움직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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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경영을 외면하는 기업은 물건을 팔 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또 시민 의식이 높아져 오염 물질을 내뿜는 기업에 대해서는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덩달아 주가는 폭락하는 등 환경 경영은 기업 가치 전반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 환경 장벽은 매년 높아간다=내년 7월부터 납.수은.카드뮴 등 6대 오염 물질이 들어 있는 전기.전자 제품은 EU 수출이 전면 금지된다. EU의 '유해물질 사용 제한 지침(RoHS)'때문이다. 또 내년 12월부터 휴대전화 단말기는 전체 부품의 65%, 소형 가전제품은 60% 이상 재활용할 수 있어야 EU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자동차는 더 엄격하다. 2008년 3월부터 95% 이상 재활용할 수 있어야 EU안에서 판매가 가능하다. 또 EU는 물론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도 자동차 배기가스 속의 이산화탄소(CO2) 배출을 일정량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등의 규제를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이는 그리 호락호락한 규정이 아니다. 전자 부품에 흔히 쓰던 '납땜'도 납을 포함하면 안 된다는 규제 때문에 쓸 수 없어 다른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본의 소니는 2001년 '제품 1㎏당 카드뮴이 100㎎을 넘을 수 없다'는 당시 규제를 지키지 못해 유럽에서 게임기와 부품 등 1억6000만 달러(약 1660억원)어치를 회수하기도 했다. 국내 업체들은 선진국의 규제에 차근차근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 등은 수천 개 부품업체의 제품을 일일이 조사해 오염 물질을 없앤 중기에 인증서를 주는 등 EU의 규제에 대비할 체제를 갖췄다. 삼성SDI는 이보다 한발 앞서 전세계 7개국 13개 생산 법인에서 만드는 모든 제품에서 이미 6대 오염물질을 없앴다.

전기.전자 업체들은 재활용률에 대해서도 "이미 EU가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선 상태"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경기도 남양 종합기술연구소 안에 '자동차 리사이클링 센터'를 준공했다. 폐차 과정을 연구해 EU의 '2008년 95% 재활용'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다. 현대차는 또 하이브리카를 개발하는 등의 방법으로 선진국의 배기가스 규제에 대비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카는 휘발유.디젤 등 화석연료와 전기를 함께 동력원으로 쓰는 자동차로 매연 등을 훨씬 덜 내뿜는다.

◆ 환경 경영을 잘하면 주가도 오른다=주가도 환경 경영에 따라 울고 웃는다. 환경 경영에 신경을 쓰는 기업들의 주가가 더 빨리 오르고 있는 것이다. 1993년 12월~2005년 8월 사이 전 세계 주가 흐름을 봐도 그렇다. 미국 등 선진 23개국의 주요 기업의 주가를 토대로 산정하는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 지수는 이 기간 동안 137% 올랐다. 반면 전세계를 통틀어 업종별로 환경 경영 등을 잘하는 기업 5~6개씩, 전체 320여 업체를 골라 산출하는 다우존스 지속가능 경영 지수(DSJI)는 같은 기간 동안 185% 상승했다. 환경 경영 기업들의 주가가 거의 50%포인트 가량 더 오른 것이다. 현재 한국 기업 중에는 포스코와 삼성SDI만 DSJI에 들어가 있다. 환경경영 기업의 주가가 많이 오르기는 국내도 마찬가지다. 환경경영 평가 전문업체인 에코프론티어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국내 환경경영 A등급 33개사의 주가지수는 2001년 1월부터 올해 9월 사이 2.35배 올랐다. 이는 KOSPI지수 상승(1.98배)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환경 경영에 신경을 쓰는 기업일수록 소송 등으로 주가가 폭락할 위험이 낮아 연금.보험 등 장기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이 몰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160조원의 자산을 지닌 네덜란드 연기금 ABP는 환경 경영 등을 평가하는 '이노베스트'란 회사를 세워 여기서 나온 평가 결과에 따라 투자를 하고 있다. 또 미국의 투자연구기관인 소셜 인베스트먼트 포럼에 따르면 환경 경영의 우수성을 살펴 투자하는 펀드 규모가 미국에서만 현재 2조1600억 달러(약2250조원)에 이른다. 이런 흐름은 국내에서도 시작됐다. 조흥투자신탁운용은 환경 경영 등을 잘하는 기업을 골라 투자하는 펀드를 지난달 국내 처음으로 선보였다. 분기마다 환경 경영성과 등을 평가해 투자 대상 기업 선정에 반영할 계획이다. 조흥투신운용 박정현 투자전략팀장은 "국내에서도 위험이 적은 기업을 선호하는 장기 투자자들이 많아질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환경 경영 기업에 투자가 몰려 이들 기업의 주가 오름세가 더욱 가팔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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