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인격적 대우 받는 군이 더 강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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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창군 이래 일부 장군급 지휘관이 저질러 온 '사병의 사병화(私兵化)' 행태는 그야말로 다양했다. 공관에서 지휘관의 개인적인 심부름을 하는 것은 그나마 약과다. 지휘관의 부인이나 가족들의 '지시'도 이행해야 했다. 지휘관 자녀의 '과외 선생'이나, 심지어 지휘관의 테니스.골프 연습시 '공 전달' 역할도 했다. 과거보다는 정도가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런저런 악습이 '관행'이라는 미명하에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당번병이 "멸치를 잘못 보관했다"는 이유로 지휘관에게 폭행당한 것이 단적인 예다.

군은 위로부터의 명령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상하 관계의 경계가 가장 뚜렷한 곳이다. 그 상하 관계가 전투와 일에서 구분될 뿐 인격의 차이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상관과 부하는 결코 '주인'과 '하인'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똑같은 인격을 가진, 적과 맞서 싸워야 하는 동료이자 동지인 것이다. 군의 전투력은 장병의 사기와 직결돼 있다.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병사가 '하인'의 대우를 받는 병사보다 전투와 일에서 더 헌신적인 것은 당연하다. 특히 지휘관이 사병들에게서 존경받을 때 장병은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다.

사병화는 군 지휘관들이 아직도 일제시대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러포트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부하들을 돌보면 부하들은 당신을 돌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 지휘관들이 명심해야 할 조언이다. 사병들은 일정기간 군에 복무했다가 다시 사회로 돌아간다. 이들이 구습에 젖은 군에 환멸을 느낀다면 군 전체에 대한 불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번 조치가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