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자율성과 획일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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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월 개학이후「대학의 봄」이 부르짖어지고 있다. 제적생들이 복학하고 상주해 있던 경찰관이 철수하고 수업에 지장이 없는 학생집회가 허용되고 있다.
5·16후 계속되었던 타율에서 벗어나 자율화로 전환한 학원은 생동하고 있다. 긴급조치4호와 9호 등에 의한 학원의 타율이 10여 년 계속되는 동안 교수와 학생은 타율에 젖어왔기에 갑작스러운 자율화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학원은 원래 자율적인 사회다.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는 근세자연법의 한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계 각국 헌법이 이를 규정하였고 교수회의 자치와 학생회의자치는 불문율로도 지켜졌다.
우리 헌법도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고 교육의자주성·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4·19이후의 학원사태에 대한 반발로 자유는 침식당하고 타율화로 치달았다.
타율화 방법으로 교원의 임기 제와 재임용 제, 교수회의 유명무실화, 학·처장 등 보직교수의 우대, 문교행정공무원의 군림 등이 나타났고 급기야는 경찰의 상주, 타율적 징계 등 의 결과를 가져왔다. 또 대학입시의 명목화, 계열별 모집, 졸업 정원제 등 학원 대책 적인 문교정책이 고안되기도 했다. 이제까지의 문교정책은 학원의 안정이란 목적을 위하여 교육의 자주성을 규정한 헌법을 유린한 것이 많았다.
사실이지 교육행정에서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2세들에게 준법정신을 교육해야 할 문교당국이 헌법의 이념이나 법령을 준수하지 않을 때 그 역효과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의 문교정책 중에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사례가 많았다. 예를 들면 종교를 믿는 학생들을 행정의 편익 때문에 이교의 종립중·고등학교에 배정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는 학생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국가가 특정종교를 강제로 포교하는 결과로 되어 정교분리에도 위배되는 처사였다. 다행히 근자에 와서 이 폐단은 줄어들었다고 하나 아직도 천주교 학생이 신교 중·고등학교에 배정되는 길이 완전히 배제되고 있지는 못하다.
중·고등학교의 평준화 정책이나 현행 입시제도도 헌법에 위배된다고도 할 수 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능력」과 상관없이 학교배정을 하고 그것이 학생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중·고등학교의 교원이나 시설이 평준화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일률적으로 학생이나 학부모의 의사를 묻지 않고 통학거리만을 위주로 학생을 배정하는 것은 개인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오, 학생의 학습 권과 학부모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중등교육에서도 국민학교와 마찬가지로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지원입학을 시켜야한다. 공립학교의 경우에는 문교부와 교위의 노력에 의하여 어느 정도 평준화할 수 있으나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교원의 이동이 불가능하고 시설확장이 거의 불가능하여 평준화를 기하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최근에는 사립명문고도 등장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공립학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음을 문교당국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 사립학교의 건학 정신이라든가 교육목적까지도 고려하지 않고 학생을 강제 배정하는 것은 사립학교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것이라 하겠다.
문교부는 영재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과학고교·외국어고교·예술고교 등의 신설을 권장하고 특성화, 선발시험을 인정하고 있다. 상고·공고·농고 등의 경우에는 지원에 따라 배정하고있다.
그런데 유독 인문계고교의 경우에만 학생의 지망을 무시하고 강제배정을 하고있는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문계 고교는 대학입시 준비 교이기 때문에 진정한 영재교육을 해야할 것인데도 이에 역행하는 평둔화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평준화를 빙자한 강제배정은 2O점 짜리 수학천재를 양산하는 결과만 빚고 있다. 고교의 평둔화 정책은 대학교육의 질 저하를 야기하는 것이오,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장본인임을 이해하여야 하겠다.
문교부는 인문계고교의 평준화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직시하고 인문고교의 경우에도 지원에 따른 경쟁입시를 허용하여야 할 것이다.
과거와 같은 명문고교의 과소 현상을 줄이고 고교평준화를 어느 정도 지향하는 경우에는 자기학구내에 있는 인문고교만이라도 선 지원 후 배정하는 방안을 강구해야하겠다. 국가나 지방자치 단체가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고교를 강제 배정하는 것은 헌법이념에 위반되는 것임을 명심해야하겠다.
멀지않아 대학입시 개선방안이 확정되리라고 한다. 대학입시에 있어서는 현재의 학력고사에 대학의 본 시험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하겠다. 내신성적과 학력고사성적을 대학입학 사정에 어느 정도 반영할 것인가는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할 것이오, 문교부는 획일성을 강요하지 말아야 하겠다.
대학의 경우 선 지원 후 시험의 방법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국가가 학생을 배정하는 방법은 대학의 권위와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려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학입학 배정과 진급·졸업사정 등은 교수회에서 의결하여야 하겠다. 총·학장의 일방적인 입학결정과 졸업사정으로 말미암아 교수들은 소외감을 가지고 학교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기한부 고용원으로서의 지위를 한탄하기까지 했다.
대학의 자율·자치는 교수회의 자치여야 한다. 유신이후 땅에 떨어진 교권을 회복하여 교수회가 학사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때 대학의 안정과 교육의 충실이 결과 될 것이다.
정부당국은 교육행정의 성패여부가 조국의 선진화 여부를 결정지으며 국민의 행복추구권 보장에 절대적이며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주의 구현에 결정적임을 명심하여 교육행정의 법치화를 위한 일대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획일성과 타율성을 배제하고 다양성과 자율성이 꽃피는 교육행정이 마련되어야하겠다. <서울대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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