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 日부동산 사재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5면

국제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이 '일본 부동산 잡기'에 나섰다.

1990년대 초에 비해 상업지 빌딩의 가격이 평균 80% 이상 떨어진 만큼 '지금이 투자 적기'라고 판단한 해외자본이 속속 일본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지리라고 많지만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매물을 잡기 힘들기 때문에 주식처럼 '무릎에서 사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게 이들의 판단이다.

◆누가, 왜 사들이나=일본의 부동산에 가장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는 곳은 세계 최대의 보험사인 AIG다. AIG는 지난 18개월간 일본에서 4백여건의 부동산을 매입한 데 이어 앞으로 2년 동안 4백여건을 매입할 계획이다. 일본의 부동산 시장이 곧 회복할 것이란 예상에서다.

투자대상으로 삼은 빌딩 중 일부는 일반 투자가들의 자금을 끌어들인 신규부동산 펀드에서 자금을 끌어다 매입하고 나머지는 AIG의 자체 자금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일본 부동산 전문가들은 "AIG가 일본 부동산 시장에 총 3천억~4천2백억엔(3조~4조2천억원)의 자금을 쏟아 부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금융회사인 메릴린치도 지난 2월 호주의 렌드리스사와 공동으로 도쿄 중심지에 위치한 소고(相互)빌딩 일곱 곳을 2백28억엔에 인수했다.

이에 앞서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8월 파산한 다이세이(大成)화재의 도쿄 본사 건물 등 다이세이화재가 소유하고 있던 건물 수십개를 일괄 매입해 화제에 올랐다. 이 밖에 골드먼삭스도 일본 내 부동산 투자액을 총 1조2천억엔(약 12조원)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부동산 사냥'에 나서고 있는 것은 단지 금융기관뿐만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고급 패션 브랜드인 구치가 긴자 한복판에 있는 긴테쓰긴자 빌딩에 월세를 얻어 새 점포를 내려 했는데, "이렇게 싼 줄 몰랐다"며 아예 빌딩 전체를 1백억엔에 사들이는 일도 있었다.

닛케이 부동산마켓정보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일본 내 부동산가격이 떨어지고는 있지만 입지조건이 좋은 도쿄 도심 빌딩의 경우 점차 매물이 사라지는 추세"라며 "해외 투자기관들도 그런 점을 알고 달려들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10년 넘게 진행된 일본의 디플레이션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 기대기도 한다. 국제 금융기관들의 부동산 매집이 디플레 종료의 신호탄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떨어졌기에?=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1990년대 초 버블이 꺼지면서 50~80% 가량 폭락했다.

상업지의 경우 92년 초를 1백으로 봤을 때 지난해 말 가격은 19.7이다. 이에 따라 사무실 임대료도 도쿄 도심의 경우 92년 1백에서 지난해 말 37.0으로 폭락한 상태다.

게다가 최근 도심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올해에만 총 2백67만㎢의 업무공간이 새로 생겨나는 등 부동산 가격이 올라갈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