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성완종 리스트' 문무일 특별수사팀에 전권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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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 특별수사팀의 수사가 본격화됐다. 특별수사팀장인 문무일 대전지검장과 수사검사들은 어제 서울고검에 마련된 사무실에 모여 향후 수사 계획 등을 논의했다. 문 팀장은 기자회견에서 “결연한 의지를 갖고 국민적 의혹이 집중된 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일체의 이해관계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박근혜 정부 최악의 정치적 부패 스캔들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정국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수사팀이 성 전 회장의 주장을 근거로 관련 계좌에 대한 자금 추적에 나서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즐겨 쓰는 표현처럼 ‘수사는 생물’이다. 어느 방향으로 튈지 수사팀조차 알 수 없다. ‘2012년 대선자금 불법 모금사건’으로 번질 공산이 큰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여야가 함께 대선자금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사 상황에 따라 한국의 정치지형을 상당 부분 바꿀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가 검찰 품 안에 들어온 것이다. 물론 수사팀은 정치적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수사팀의 명칭을 ‘경남기업 의혹 관련 특별수사팀’으로 표기해 달라고 요청한 데서도 이 같은 의미가 읽혀진다. 그렇다고 검찰이 처음부터 수사의 경계를 그었다고 해석하기에는 이르다. 검찰에 대한 여론의 과도한 기대와 정치적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사팀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성완종 리스트’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우선 청와대와 법무부는 검찰에 대한 통제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현 정부 들어 국정원 댓글 사건의 수사 범위와 방향을 놓고 검찰은 큰 혼란을 겪었다. 이 사건 수사팀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추태를 보였던 것을 국민들은 기억한다. 논란의 배경에는 청와대와 법무부의 그림자가 있었다. 이 와중에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자 파문’으로 옷을 벗은 것도 권력의 수사권 장악 시도로 해석됐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수사팀이 ‘성역 없는 수사’를 선언한 마당에 정치적 주문은 검찰을 흔들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특검제 도입 등의 논의는 수사 상황을 지켜본 뒤 해도 늦지 않다. “특검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중 삼중으로 수사를 할 필요가 있나”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검찰이 과연 살아 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활동한 11차례 특검의 비효율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검이 시행되기까지 3개월가량의 시간을 마냥 허비할 수만도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김진태 검찰총장의 수사팀 보호다. 정치적 외풍을 막아주고 수사팀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대검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가 한 예다.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은 “청와대에 들어와 상의를 하자”는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대검 중수부를 없애려면) 내 목부터 쳐라”며 권력과 각을 세웠다. ‘국민의 검찰’이란 검찰 역사상 유례없는 평가를 받았던 배경이다. 김영삼 정부 때 한보 사건 2차 수사를 맡았던 대검 중수부가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를 구속할 수 있었던 것도 심재륜 중수부장이 지휘한 수사팀의 독립성을 보장한 데서 비롯됐다.

 김 총장도 자신의 자리를 걸고 수사팀이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 대검의 반부패부를 통해 수사 상황을 보고받겠다는 계획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을 간곡히 바란다. 특별검사나 특임검사의 형태처럼 수사팀에 모든 재량권을 주고 최종 수사 결과만 보고받는 것이 어떨까. 경남기업에 대한 수사 착수 배경을 놓고 이런저런 추측이 무성하다. 이 때문에 김 총장의 조언이나 지시는 정치적 주문으로 비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수사팀도 이 사건에 대한 특검의 재수사가 없도록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다. 문무일 팀장의 표현처럼 검사로서의 마지막 양심을 걸고 수사만 생각하고 바라볼 것을 촉구한다. “수사에 대한 평가는 국민의 몫으로 남겨 놓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수사팀의 다짐이 허언(虛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