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관이 공격받는데 외교부가 대사 행방도 몰랐다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지난 12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발생한 한국 대사관 피습과 관련한 외교부의 ‘기강 해이’가 도를 넘고 있다. 외교부는 사건 당일 브리핑에서 “이종국 주리비아 대사가 이웃 나라인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 있는 임시공관에 머무르며 사건을 수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임기를 마치고 교대하던 이 대사는 이미 지난 1일 한국으로 귀임한 것으로 확인돼 결과적으로 외교부가 사실과 다른 말을 한 셈이 됐다.

 더욱 황당한 일은 리비아를 관할하는 외교부의 아프리카·중동국이 13일 오후가 돼서야 이 대사의 귀국 사실을 파악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언론 보도를 본 이 대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 알려 왔기 때문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더구나 바로 이날 현지에는 이 대사의 후임인 김영채 대사가 부임했다고 한다.

 해외 공관이 극단주의 세력의 기관총 공격을 받는 긴급 사태를 맞았는데도 외교부가 해당 공관장이 들고 나는 일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대사를 비롯한 공관원의 행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교민 안전을 확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교 업무의 기본이다. 본부에서 대사와의 통화도,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릇된 상황을 국민에게 전파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린 행동이다.

 현재 중동·북아프리카 상황은 어느 때보다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는 물론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리비아·나이지리아·케냐·튀니지 등지로 파고들어 세력을 넓히는 중이다. 예멘에서는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부족 간의 종파 갈등이 내전으로 확대됐다. 주예멘 한국 대사관 직원들은 이달 초 수도 사나를 떠나 인근 아덴만의 청해부대 18진 왕건함에서 근무한다.

 중동 대부분의 지역에서 교민 안전과 국가 이익이 위협받고 있다. 언제든지 긴급 상황이 터질 수 있다. 외교부는 급박한 현지 상황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부문별로 긴급 대응체계를 기민하게 가동해야 한다. 우선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도록 근무 자세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