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노수복할머니 원한의 일대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일본순사들에게 끌려가 감금된지 10여일이 지나 나는 다른 여자들과 함께 어디론가 옮겨졌다.
우리를 감시하고 있던 일본사람들끼리 지껄이는 말은 자세히는 알 수 없었으나 황국사절단으로 어디론가 더운 나라로 파견된다는 내용이었다.
물항아리 깨뜨린 일이 죄가된 것으로 알았는데 황국사절단으로 간다니 도저히 영문을 헤아릴 수 없었다. 심지어 어떤 일본인감시자는 『축하한다』고 까지 말하는게 아닌가.
다시 옮겨진 곳은 부산의 바닷가 군인막사였다. 이 군대막사에서 나까지 6명의 여자가 짙은 바닷가의 갯내음을 맡으며 먼발치서 훈련을 받고있는 일본군인들을 구경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군복차림의 일본인 한사람이 옷꾸러미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갔다. 군복이였다.

<가족에도 못알려>
우리들은 그동안 냄새나는 방에서 오랫동안 지냈기 때문에 세탁된 옷을 보자 군복이건 아니건 모두 갈아 입었다.
남자용 군복도 있었고 여자용도 있었으나 몸에 맞는 것이라곤 거의 없었다.
어떤 여자는 『황국사절단에게 왜 이런 맞지 않는 옷을 주느냐』며 긴소매·긴바지가랑이의 군복에 불평을 털어 놓기도 했다.
가끔 우리가 있던 막사를 기웃거리던 일본인 군인들이 없진 않았으나 별다른 기미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른바 황국사절단으로 간다면 언제 어디로 왜 가는지 가족에겐 알려야겠는데 일본인들이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미 부산에 오기전에 일본순사들로부터 폭행을 당해 잔뜩 겁에 질려 있었는데다 이곳에서도 주변에 일군들이 우굴거려 매일 눈치보기에 바빴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몇마디 사정얘기를 꺼내 보았지만 통하지가 않았다. 우리들은 바로 죄수나 매한가지였다.
당시 일본은 만주와 동남아에서 전선을 확대하면서 병력을 증강, 4백만명의 일본군을 편성했다. 이같은 대규모 병력은 이른바 「니꾸 이찌」(29.1, 일본군29명에 1명의 위안부)라는 정신대조직계획에 따라 위안부 수도 함께 늘어나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야자수보고 놀라>
그래서 소요위안부 14만여명을 충당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마구 여자사냥을 벌였다.
일본정신대의 90%가 한국여자였다는 사실은 일본의 한국인에 대한 만행이 어떠했느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조선총독부는 만주전선은 철도로, 남방전선에는 일본해군함정으로 한국인 여자들을 실어 보냈다.
나는 이 와중에서 인천·목포등 전국 몇개항구에 있던 정신대파견 대기소의 하나인 부산에 끌려갔던 것이다.
이곳에온지 달포도 더 지난 어느 쌀쌀한 초겨울 날 우리들은 일본군병사들이 득실거리는 해군함정으로 옮겨졌다.
배 밑바닥의 조그마한 선실에 우리 6명은 수용됐다.
갑판에서는 가끔 일본군인들이 기합을 받는 모습이 보였고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군가를 미친듯 불러대기도 했다.
이 배안에서는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왔다. 처음 순사들에게 잡혀 이배를 타기까지엔 걸핏하면 인솔자의 매를 맞기 일쑤였는데 함정에선 장교나 병사들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매질을 하지 않았다.
항해는 약 40일 가량 걸린 것 같다. 날이 갈수록 배안이건 갑판이건 갑갑해 견디기 어려울만큼 더운 김이 몰려와 배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도착한 항구는 항해 때 보다 더 무더운 곳이었다.
이 항구 주변에는 생전 처음보는 야자수와 잎이 넓은 이름모를 나무들이 무성했다.
이런 이국 풍정에 도취돼 앞으로 무슨일이 닥칠지 몰라 불안해하던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순간뿐이었다. 멀리서 포성이 은은히 들려오고 있었다.
배에 타고 있던 일본인들이 『쇼오난 (소남), 쇼오난』이라고 소리쳤다.
소남은 당시 영국이 말레이지아로부터 뺏어 해군기지로 쓰고 있던 싱가포르로 일본은 이지역을 점령한뒤 일본식으로 지명을 바꾼 것이다.
우리 일행은 배에서 내리자 군용트럭에 실려 다시 군대막사로 옮겨졌다.

<일군장교가 맞아>
싱가포르 거리는 중국복장 차림의 현지 사람들이 땟국에 전모습으로 다니고 있었고 곳곳에 전쟁이 지나간 자국이 역력했다.
우리가 도착한 시기는 일본군이 센토사및 부키티마 전투등 싱가포르에서의 치열한 전투 끝에 영국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전후였던 것 같다.
영국군은 1943년 2월15일 이른바 「치욕의 항복」으로 싱가포르를 완전히 일본에 넘겨 주었었다.
우리는 한 부대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부대장 앞으로 인솔돼 갔다.
눈망울을 연신 굴리면서 눈을 부라리는 이 장교는 여간 깐깐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겉보기와는 달리 『이랏샤이마세, 이랏샤이마세』 (어서오십시오)라며 상냥한 말씨로 우리를 맞았다.
초인사가 끝난뒤 군복입은 또다른 인솔자가 나타나더니 부대 변두리의 간이막사로 우리를 데려갔다.
저녁 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우리 일행은 딱딱한 나무 침상에 서로 얽혀서 곧장 잠에 곯아떨어졌다. 너무나 피곤했다. 【핫차이(태국)=전종구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