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스님들, 직접 농사 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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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하며 참선하는 한국불교의 전통적인 「승려상」이 재현되고 있다. 불교 조계종 양산 통도사는 올해부터 승가 「울력동원」과 과학 영농의 농사짓기에 착수, 승려들의 공동체 의식과 사원 경제 자립을 다지면서 사찰운영체제를 크게 혁신키로 했다.
산중 대중 승려 1백여명이 직접 농사를 지을 사찰소유 논과 밭은 모두 4만여평.
계율도양이며 불보사찰인 통도사의 자영영농 계획은 이미 기계영농을 의한 경지정리작업을 끝내고 본격적인 농사일에 나설 채비가 한참이다.
지난해 말과 2월말까지 두차례로 나누어 경지정리를 한 논과 밭들은 곧 씨앗을 뿌리고 비료를 줄 스님들의 바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기계영농을 위한 기술습득과 토질에 맞는 농작물의 선정, 농토의 다목적 활용 등에 대한연구도 이미 마쳤다.
무공해채소와 과일·약초 등을 생산키 위한 다각적인 특수작물재배법 연구도 진행중이다.
통도사의 이같은 사찰농업경제부흥계획은 3년전부터 구상돼왔고 지난해 소작자들로부터 임대농지를 모두 회수함으로써 실현됐다.
통도사는 「생산불교」와 해이해진 승가고유의 공동체의식 함양을 겨냥한 자영영농추진과 함께 불사 등으로 안고 있던 사찰 빚 1억여원을 청산, 사찰운영쇄신의 정지작업도 끝냈다. 사찰 빚은 조실 윤월하노장이 붓글씨를 써주고 받은 필례금 등을 모아 개인적으로 저축했던 1억원을 털어 갚아주었다.
근래 사찰들은 농사짓기를 외면하고 신도들의 「재시의존」에 매달려 오고있다.
한국불교의 전통적인 사원경제체제인 사찰영농은 8·15후의 「농지개혁」 에 따른 소유전답 감소와 60년대 이후의 산업화 추구 등으로 부득이 쇠퇴해질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불교 사찰은 승려들의 공양미는 물론 채소 한 포기까지도 시장에서 사다 먹는
실정이다.
아직도 막대한 농지와 임야 등을 소유한 산중 사찰들의 이같은 영농이탈은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자아냈었다.
통도사 승려들의 자영영농을 통한 승가 공동체의식 함양과 생산불교의 지향은 오늘의 불교현실에 시사하는바가 자못 크다. 원래 승가울력은 수도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스님들의 중요 수행덕목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불교 승단현실은 수도만을 강조한 채 「일일부작 일일부식」을 강조한 백장선사의 근로정신이나 협동적인 공동체의식을 외면해왔다.
잦은 불교분규도 이같은 「울력정신의 해이」에서 오는 승려공동체의식 결핍이 중요원인의 하나다.
물론 승려라고 근대화의 발전혜택을 일체 거부한 채 시대에 맞지 않는 원시불교의 생활상을 유지할 수는 없다.
통도사의 새로운 자영영농은 아직도 전통적인 산중 도장을 중심으로 많은 땅을 갖고 있는 불교 사찰경제 개발과 농업경제 부흥에의 기여가 크게 기대된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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