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티스' 연구실엔 벽이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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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세계 제약업계에 스위스 제약사인 노바티스 돌풍이 거세다. 매출로는 1위인 미국계 화이자, 영국계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등에 이어 4위지만 신약 개발에서는 1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2000~2004년 노바티스가 미국에서 시판 허가를 받은 약품 수는 13개로 화이자(9개)를 제쳤다.

내놓는 신약도 그저 그런 게 아니다. 노바티스는 2001년 유명한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을 선보였다. 또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간학회에서 내년 초 출시할 B형 간염 치료제인 '텔비부딘'의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임상시험을 담당한 문영명 연세대 의대 교수는 이 발표회에서 "효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내성을 가진 바이러스가 생길 가능성도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노바티스가 현재 임상시험을 하고 있는 약물만도 75가지. 제약업체 중에 가장 많다. 지칠 줄 모르는 이들의 신약개발 비법을 찾기 위해 지난달 미국 보스턴의 노바티스생명의학연구소(NIBR.사진)를 찾았다. 이들은 '열린 연구 환경, 효율적인 연구개발(R&D) 관리'를 비법의 핵심으로 제시했다.

?열린 R&D 환경을 만들었다=노바티스는 2002년 5월 보스턴의 하버드대와 MIT 중간 지점에 NIBR을 세우고 R&D 총본부로 삼았다. 그와 동시에 하버드대와 MIT에서 인재를 받아들였다. 하버드 의대 마크 피시먼 교수를 NIBR 초대 사장으로 영입했다.

피시먼 사장은 연구원들끼리는 물론 공동 연구를 펼치는 생명과학 벤처 등 파트너들과도 적극적인 대화를 나누게 했다. 폐쇄적이던 연구소 문화를 '열린 연구 환경'으로 확 바꾼 것이다. 연구소 구조도 의사소통이 편하게 개조했다. 연구실과 사무실의 벽을 유리로 만들었고, 중앙 홀은 천장까지 뚫었으며 엘리베이터 역시 네 면을 모두 유리로 만들었다. 복도 한가운데 원형 회의실 벽면도 전체가 유리일 정도로 '열린 공간'을 추구했다.

피시먼 사장은 "우리 연구소는 숨을 곳을 찾기 어렵게 만든 건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건물 구조 때문인지 사람들이 제각각 틀어박혀 연구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모여 이것저것 연구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됐다"며 "이런 문화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 효율을 높였다='노바티스는 42억 달러(4조8000억원), 화이자는 77억 달러(8조8000억원)'. 지난해 두 회사의 R&D 투자 금액이다. 하지만 신약은 오히려 노바티스가 더 많이 내놓고 있다. 노바티스 관계자는 "그 비결은 노바티스의 연구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신약 하나의 개발 비용은 2억 달러(약 2000억원)에 육박한다. 그중 대부분은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렇게 거액을 들여 임상 시험을 하더라도 상품화에 성공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하다. 피시먼 사장은 바로 이 상품화율을 높이는 데 착수했다.

그러면 R&D에 같은 돈을 들이더라도 더 많은 신제품이 나온다. 상품이 많아지면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어 다시 R&D 투자가 증가하는 선순환을 이루게 된다. 이런 생각에 피시먼 사장이 부임하자마자 도입한 것이 '개념 입증(Proof of Concept) 시험'이다.

대규모 임상시험을 하기 전에 소수 환자들만을 대상으로 효능과 그에 따른 상품화 가능성을 미리 알아보는 것이다. '미니 임상시험'을 하는 셈이다. 효과가 기대 이하다 싶으면 미니 시험 단계에서 포기했다. 그래서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줄였다. NIBR의 카렌 무어 박사는 "미니 임상시험을 도입한 뒤 상품화 성공률이 50%까지 높아졌다"며 "조만간 이를 70%까지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스턴=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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