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랄라 개그우먼' 의약영업 귀재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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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한국 법인의 '잘나가는' 영업사원 박혜숙(30.사진) 대리는 방송계 개그맨 출신이다. 1998년 MBC 신인 개그우먼 상까지 탔던 박씨는 2000년 제약사 영업으로 길을 바꿨다. 뛰어난 영업 실적을 보여 지난해 GSK의 우수사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 출신인 그는 대학 시절 한 맥주 회사가 주최한 코믹 댄스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그냥 춤이 아니라 영화배우 박중훈씨가 맥주 광고에 나와 '랄랄라~'를 부르며 추던, 그 춤을 흉내 낸 것이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과대표를 맡았고 학과 응원단장으로 나설 정도로 활발한 성격이었다. 4학년 여름방학 때 지원한 개그맨 공채 시험에서도 '랄랄라 춤'으로 심사위원인 PD들을 사로잡았다. 선발된 뒤 6개월 정도 연수를 거쳐 바로 코미디 프로 고정에 출연했다. 그리고 신인상까지 받았다.

"그때부터 꼬였다고나 할까요. 잘해야겠다고 했는데 자꾸 프로그램 시청률이 떨어지고…. 우울증에 걸려 몇 달 정신과 상담을 받았어요." 그는 결국 의사의 권유로 다른 직업을 찾았다. 마침 한 건강 정보 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홍혜걸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에게서 "당신 같은 성격이면 의약 영업을 해도 잘하겠다"말을 들었던 터였다.

구인 정보를 뒤져 외국계 제약사인 한국릴리에 입사했다. 항생제 영업을 담당하게 됐는데, 뜻하지 않게 일류 대형 병원을 배정받았다. "나중에 듣고 보니 그 병원에 대한 한국릴리의 매출이 자꾸 떨어져 포기하는 마음으로 신입 직원인 제게 던져줬다네요. 그땐 그냥 감사한 마음에 열심히 뛰었죠."

하루 종일 진료.치료에 지친 의사들에게 웃음을 주는 전략으로 접근했다. 개그맨 시절 꼼꼼히 적어 왔던 우스개 노트에서 하나씩 얘기를 꺼내 들려줬다. 의사 앞에서 '랄랄라 춤'도 췄다. 또 간호사들을 통해 의사의 정보를 파악한 뒤 영업에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다 2003년 GSK에 스카우트 되었다. 여기서도 그녀는 '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가수 이정현이 노래 '와'를 부르며 춘 춤을 변형해 의사들을 사로잡았다. 이정현은 새끼손가락에 마이크를 붙이고 다른 손에 부채를 들고 춤을 췄지만, 박 대리는 마이크 대신 새끼손가락에 고추장을 바르고 부채 대신 쓰레받기를 들었다. 병원 부서별 야유회와 송년모임 때 사회자는 늘 그의 몫이다.

글=권혁주,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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