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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석의 후아유] 김구라는 내 우상이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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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여성중앙’ 연재를 시작할때 첫 타자로 인터뷰하고 싶었던 사람이 김구라다. 그는 나의 방송 멘토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첫 번째 인터뷰가 무산되었고, 좀처럼 그와의 재회가 이뤄지지 못했다. 매주 ‘썰전’ 녹화장에서 만나 세상의 온갖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나니 새삼 특별했다. 김구라와 작정하고 나눈 허심탄회한 이야기.

독설 뒤 아픔까지, 김구라는 내 우상이다

Q : ‘떡국열차’가 요즘 화제예요. 얼마 전에 촬영 마쳤다고요
지난주에 촬영 마쳤는데 나쁘지 않게 나온 것 같아요. ‘떡국열차’는 아시다시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19금 코미디로 패러디한 웹 시리즈물이에요. 인류의 마지막 열차에서 진정한 의미의 ‘떡’을 찾아 꼬리 칸에서 엔진 칸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죠. 크로놀 대신 떡으로 소재를 비틀고, 캐릭터들도 변화를 줬어요. 저는 꼬리 칸의 혁명 주자 ‘커져스’로 나와요. ‘설국열차’의 ‘커티스’ 캐릭터죠

Q : 영화 제목이 에로틱해요. ‘떡치지 못한 자들의 반란’이라는 설정도 그렇고
열차가 떡을 쳐야 움직인다는 설정일 뿐 에로틱하진 않아요. 그냥 패러디죠.

Q : 봉만대 감독이 만든 데다 제목이 ‘떡국열차’라 남녀가 열차 안에서 '떡치는' 건 줄 알았어요
강 변호사 바람(?)대로 그런 장면이 나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베드 신이 없어요(웃음).

Q : 봉만대 감독과는 원래 친했나요
2000년대 초에 김구라, 황봉알, 노숙자 3인방(구봉숙)이 좀 거칠게 인터넷 방송을 했는데, ‘구봉숙이 간다’는 콘셉트로 화제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코너가 있었어요. 그때 에로 영화만 연출하다가 극장판 영화를 처음 개봉해서 화제가 됐던 봉 감독을 인터뷰하면서 인연이 됐죠. 나이도 같아서 이후에도 계속 친구처럼 지냈어요.

Q : 그런데 왜 하필 ‘설국열차’ 패러디인가요. 핫하기로 치면 ‘국제시장’인데 철 지난 ‘설국열차’ 패러디물이 나온다는 게 약간 쌩뚱맞은 느낌이었어요
예전에 봉 감독이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떡국열차’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러다가 제가 작년에 집안일로 다 내려놓고 지내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올해는 뭔가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봉 감독한테 제가 전화했어요. 그래서 추진된 거예요. ‘국제시장’ 신드롬이 있기 전부터 얘기가 돼왔던 거라 물릴 수도 없었고요(웃음).

Q : 이쪽으로 다른 ‘촉’이 왔나봐요
사실 요즘 방송 환경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아요. 솔직히 요즘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은 라인업이 올드해요. 포맷이 거의 비슷하고, 케이블과 종편이 가세해서 경쟁 구도만 커지고, 심지어 종편도 라인업이 올드한 느낌인 건 마찬가지고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종편과 케이블이 예전처럼 혁신적인 것을 시도하기에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방송국은 제작비도 생각해야 하니 스튜디오에서 입만 ‘터는’ 포맷이 대부분이고요. ‘라디오스타’ ‘세바퀴’ ‘썰전’에서 제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하는 역할이 거기서 거기예요. 한 가지 이미지죠. 40대 중반인데다 프로그램이 예전보다 줄어서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다 보니, 이젠 새롭고 신선한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Q : 생각해놓은 그림이 있나요
요즘 광고 시장은 모바일과 인터넷이 기존의 광고 라인을 누른 지 2년 정도 되었고, 포털의 검색 체계도 바뀌었잖아요. 공중파 방송국에서 ‘짤방’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려 광고를 하니까요. 방송의 주 수입원은 광고인데, 예전에 제가 인터넷 방송을 하던 시절에는 인터넷 방송 광고가 전혀 없어서 회원 가입비를 받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많이 달라졌죠. 그래서 지인들과 같이 자체적으로 방송 콘텐트를 만들어서 모바일과 인터넷 쪽으로 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투브나 아프리카TV 어디든, 유통할 수 있는 짧고 임팩트 있는 콩트 형식으로요.

Q : 콘텐트 수위는요
어차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이니까 공중파나 케이블 프로그램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면 될 것 같아요. 콩트나 개그를 짤 때 ‘좀 넘친다’ 싶을 정도죠. 약간의 욕설이 들어갈 수도 있고. 그렇다고 예전에 인터넷 방송하듯이 그런 날것 그대로의 욕설은 아니고, 영화에서 욕하는 정도로요.

Q : 그렇게 하면 검열을 통과할 수 있나요
방송이 아니니까 가능한 거예요. 요즘 일반인들도 인터넷에서는 그런 것 많이 하잖아요. 주변에 가볍게 제안했더니 여러 곳에서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지금은 tvN과 얘기가 되었어요. tvN이라면 TV 매체도 관심을 보이고, 작가도 붙고, 카메라맨도 오고, 제작 환경이 좋아지죠. tvN의 멀티채널 중 하나가 ‘네이버’라 그쪽 라인을 통해서 하려고 해요.

Q : 그럼 꽤 구체적으로 얘기가 된 상황에서 ‘떡국열차’를 추진한 거네요
일단 PD까지 얘기된 상황이었어요. 그런 찰나에 봉 감독에게 조언을 구하니 ‘생각잘했다. 어차피 누구든 그쪽으로 선전하나의 싸움이다. 요즘 이미지를 바꿔주는 미국 사이트 ‘퍼니 오어 다이(FUNNY OR DIE)’가 뜨고 있다. 그 사이트의 대주주는 미국 거대 매니지먼트 회사이고, 거기 많은 배우가 속해 있다.

예를 들어 강 변호사가 거기에 속해 있다고 치자. 강 변호사 이미지가 영화에서 근엄한 킬러라면 이 이미지 메이킹을 그 사이트 안에서 해주는 거다. 그래서 그 사이트에 오바마 대통령이 나오는 영상도 꽤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 사이트에 광고가 붙고 수익이 창출되는 형식을 갖고 있는데, 한국 합작 법인도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Q : 영화에는 처음 출연한 건가요
카메오로 몇 번 출연했어요. 예전에 장근석이 나온 ‘아기와 나’도 찍었고, 김한민 감독의 ‘핸드폰’에도 잠깐 나왔죠.

Q : ‘떡국열차’ 이후 영화 쪽에도 관심이 생겼을 것 같아요
사실 예전부터 대본 좀 써보려고 작가들을 몇 번 만났어요. 미국은 한국과 활동 여건이 다르긴 하지만 자기가 직접 대본을 쓰고 영화도 만드는 베스트 군단이 많거든요. 우리나라는 아직까진 시간이 좀 걸리지만 그래도 점점 변하고 있는 추세죠.

요즘 IPTV 쪽 상업 시장이 많이 커졌는데, IPTV를 보면 듣도 보도 못한 극장 개봉작이 많아요. 그중엔 정말 아니올시다 싶은 작품도 있어요. 그런 영화를 보고 있다 보니, 차라리 내가 대본 쓰고 찍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독의 경우 연출을 공부해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대본 쓰고 카메라 감독 서포팅해주고 콘티 그려주다가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하거든요.

너무 쉽게 얘기하는 걸 수도 있지만 예전부터 그런 걸 하고 싶었던 건 사실이에요. 이런 방식으로 음악을 하는 친구가 유세윤이에요. 그 친구가 끊임없이 신선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걸 보면, 새삼 지금 난 왜 이러고 있나 싶을 때가 있어요.

김구라를 처음 알게 된 건 3년 전 이맘때 그가 진행하던 ‘화성인 바이러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부터다. 그때의 나를 눈여겨 본 그가 JTBC에서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여운혁 CP에게 나를 추천했고, 그렇게 다시 만났다.

김구라와 함께하는 ‘썰전’은 뉴스와 예능의 두 파트로 나뉜다. 뉴스야 늘 생각하던 것을 조금 정리해서 이야기 하면 되지만 TV를 즐겨보지 않는 내가 프로그램 비평을 하기는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시간을 들여 프로그램을 봐야 하니까.

그럼에도 별 무리없이 계속해 올 수 있는건 방송에 대한 조예와 탁견을 갖춘 김구라 덕분이다. 그런데 요즘 김구라의 아들 동현이에게서 아버지 못지않은 끼가 보인다.

인터뷰어 강용석은…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엘리트 코스를 밟은 남자.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 고시에 합격했고 하버드 로스쿨 유학 당시에는 학생 대표를 맡았다. 말하자면, ‘공부만으로 자수성가한 마지막 세대’일 수 있다. 어려서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미술사와 역사, 철학 등을 두루 섭렵했다. 꿈은 ‘정치 재수 성공’이고, 언젠가는 대통령이 될 거라고 말하는 이슈 메이커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본업인 변호사(법무법인 넥스트로)로 돌아간 그는 현재 JTBC ‘썰전’과 ‘유자식 상팔자’ 등에서 MC로도 활약 중이다.

Q : 동현이가 재주가 참 많은 것 같아요. 전에 래퍼한다고 했는데 진지하게 그쪽으로 가는 건가요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제가 어릴 적부터 음악을 무척 좋아해서 듣기도 많이 들었는데, 피는 못 속이나 봐요(웃음).

Q : 김구라씨도 힙합에 관심이 많았나요
저는 팝송요. 어릴 적 롤모델이 배철수씨였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들은 음악이 ‘guilty’라는 제목의 팝송이었는데 그 곡에 빠져서 그때부터 영어 공부하고, 대학도 영문과에 진학했어요. 당시 꿈이 디제이였는데, 디제이가 되려면 음악도 많이 알고 영어도 잘해야 할 것 같아서 어린 나이에 이런 계획을 세웠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팝 음악을 쭉 들었는데, 귀가 안 좋아져서 지금은 음악을 거의 못 듣고 있어요. 어쨌든 그때 제가 차 안에서 음악을 항상 들어서인지 동현이도 차만 타면 음악을 틀어요. 주로 팝송을 듣는데, 동현이는 그중에 힙합을 유난히 좋아해서 집에 와서도 듣더라고요. 그러다가 작년 말쯤 힙합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하라고 했어요. 대신, 할 거면 제대로, 열심히 하라고 했죠.

Q : 반대는 전혀 안 했나요
그렇게 해서 말을 들을 아이 같으면 공부시켰죠(웃음). 사실 처음에 동현이가 힙합을 하겠다고 했을 때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열의가 넘치더라고요. 혼자 공연도 보러 다니고. 그래서 작년에 쌈디를 소개해줬어요. 최근에는 힙합의 순례자가 되겠다는 둥 해서 라이머에게 동현이 평가를 부탁하기도 했어요. 라이머 말로는, 장난스럽게 흉내 내는 것만 보고 수준이 별로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열의도 있고 가사도 곧잘 쓴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얼마 전 라이머의 소석 회사 ‘브랜뉴뮤직’이랑 정식 계약을 했어요.

Q : 브랜뉴뮤직에는 어떤 가수가 속해 있나요
산이랑 버벌진트 등이 있어요. 이 친구들이 힙합 쪽에서는 라임 맞추거나 프로듀서를 많이 해서 꽤 인정받는 편이에요.

Q. 힙합 회사도 연습생이 있나요
있긴 한데 아이돌처럼 타이트하진 않아요. 힙합 문화 자체가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가서 랩이랑 안무 연습하고 가사 쓰는 식으로 연습생 생활을 자유롭게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6월쯤 음반을 내보자고 해서 일주일에 3번 정도 임팩트있게 바운스 연습과 가사 수정 작업을 하고 있어요.

Q : 동현이가 쓴 가사는 어때요
예전에 습작을 끄적이던 시절에 보다가 한동안 안 봤는데, 요즘 보니 라임 같은 걸 곧잘 써요. 이번에 산이 음반에 피처링을 했어요.

어려서부터 방송을 접한 동현이는 얼마 전부터 ‘MC 그리’라는 예명으로 힙합 뮤지션이 될 것을 선언했다. 나도 1년전 쯤에 조PD를 인터뷰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힙합 시장이 은근히 커서,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의 힙합 뮤지션은 엄청난 수입을 자랑한다고 한다. 대중음악계는 이제 음반이나 음원 판매로는 장사가 안 되고 공연장을 채울 수 있는 티켓 파워가 있어야 하는데, 힙합 팬들은 표를 사서 현장에서 음악을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Q : 힙합 시장이 생각보다 크다면서요
요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는 래퍼 오디션의 원조 격인 ‘쇼 미더 머니’는 물론이고, 힙합 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노머시’가 인기래요. 방송 트렌드만 봐도 우리나라에서 힙합 쪽이 아직 괜찮은 시장이라는 걸 알 수 있죠. 공연 시장에서는 특히 그런 거 같아요. 공연이 힙합 가수들에게 가장 큰 수입원인데, 힙합이 행사에 끼기 좋잖아요. 그래서 수입이 꽤 짭짤한 것 같아요.

Q : 동현이의 학교 생활은 어떤가요. 아직 공부할 때인데
동현이가 공부하는 습관이 안 들어서 잘하진 못해요.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보니 공부 자체가 익숙지 않죠. 집사람의 교육관이 남들과 좀 다른 편이에요. 자식 사랑하는 방법도 저와는 좀 차이가 있고요.

예를 들면 동현이가 촬영이 끝나는 시간이 12시면 저는 그 이후 시간이라도 학교에 보내자는 주의인데, 집사람은 남은 시간 집에 가서 모자란 잠을 자라고 하는 식이에요. 아이는 당연히 후자를 좋아하고요. 그러다 보면 저와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집사람도 나름의 자녀 교육 철학이 있을 테니 그냥 집사람의 마인드를 믿고 가기로 했어요.

사실 동현이가 방송 일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본분이 학생이면 공부 습관도 엄마가 잡아줘야 하잖아요. 아빠는 거기에 맞추는 역할이고. 그런데 우리 집은 엄마가 그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하고 있으니, 동현이가 공부를 잘하리라는 기대 안 하고 있어요.

Q : 그래도 대학은 가야하잖아요
대학은 동현이가 자립심이 생겨서 실력을 쌓게 되는 순간이 오면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뭐 어쩔 수 없는 거죠. 요즘은 연예계 쪽 진로가 정해지면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잖아요. 실제로 대학에 간 친구들도 연예계 활동하다 보면 그만둘 판인데요 뭐.

Q : 객관적으로 볼 때 동현이의 힙합 실력은 어때요
아직 어휘력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는 것 같아요. 카메라 앞에 많이 서본 만큼 무척 프리하고 자연스럽거든요. 그게 강점인 것 같아요.

Q : 동현이의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옛날에는 래퍼 도끼를 좋아하더니 요즘은 힙합인이라면 모두 다 존경한대요.

우리 나이에 제일 큰 걱정이 있다면 그저 자식 걱정이다. 나만 해도 당장 위의 두 아들의 대학 진학이 늘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김구라는 진작에 그런 걱정을 떨쳐버렸으니 맘이 편해 보인다. 자연스레 지난 연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녹화에 불참했던 것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를 예정할 때 김구라는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얘기가 흘러가자 의외로 담담하게 심경을 털어놓았다.

Q :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지난해 방송을 잠시 쉬었는데, 뭐하고 지냈나요
특별히 한 건 없고, 주로 공황장애를 치료하면서 지냈어요.

Q : 공황장애를 처음 느낀 게 언제죠
2013년 5월부터 쭉. 문제는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의사도 원인을 모른대요. 공황장애라는 병이 불안과 우울이 겹치면서 어느 순간 누구에게나 갑자기 온다고 하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는 여러 가지 집안일도 있었고, 2012년에 방송을 잠깐 그만두었다가 다시 복귀하면서 공중파를 해야 하느냐 마느냐 기로에 있었거든요. 그런 스트레스가 쌓여왔던 것 같아요.

Q : 증상은 어떤가요
처음엔 탈진 비슷하게 와요. 제가 작년 초에 야외 버라이어티 ‘4남 1녀’라는 프로그램을 할 때였던 것 같아요. 한 달에 한 번, 4박 5일 동안 촬영하는데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계속 카메라 앞에 있는데다, 좁은 방 안에서 두세 명씩 자다 보니까 기운이 쭉 빠지더라고요. 그러다가 작년 5월쯤 일정이 비어서 잠깐 중국에 갔는데, 그때 비행기 안에서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우울한 감정이 훅 오더라고요. 말로는 설명이 안 돼요.

Q :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다운되는 건가요
그러기도 하고 갑자기 막 미칠 것 같아요. 돌아버릴 것 같고. 예전에 집사람이 경제관념을 바로잡으려고 상담받았던 병원이 있어요. 그때 집사람과 동행해 제 상황을 의사한테 말했더니, 누구라도 공황장애가 올 수 있다면서 아직 초기 증세인 것 같다고 상담 치료를 받자고 하더라고요. 그냥 방치하면 증상이 더 심해진다면서. 약을 먹으면 금세 나아진다는데, 별일 없을 거라 생각하고 방치했다가 된통 당했어요. 이게 4일 있다가 증상이 다시 나타나고 괜찮아졌다가 다시 집사람이 사고 치면 또 나타나는 식이거든요. 심지어 앞에 놓인 커피잔조차 못 들 때가 있어요. 귀찮아서.

Q : 그 정도로 심각했어요
네, 그리고 엄청 졸려요. 그래서 다시 병원에 갔더니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고 해서 그때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술 마시면 약발이 안 받는다고 해서 작년 5월 20일 이후로 술은 거의 안 마시고 있어요.

김구라는 무척 솔직한 사람이라 나는 그가 공황장애로 약을 먹고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공황장애는 워낙 증상도 다양하고 증세도 미약부터 위중까지 정도의 차이가 심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중년 남자가 겪었을 막막함과 답답함이 내게도 밀려왔다.

Q : 우울증 약을 먹을 땐 술을 끊는 게 엄청 중요한가 봐요
술을 마시면 불안과 우울이 덜 느껴지잖아요. 대신 다음 날 피드백이 심하게 오죠. 그러다 보면 또 술을 마시게 되고. 이런 식으로 알코올 중독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그래서 우울증 환자들이 스스로 술을 끊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요. 저는 약 먹으면서 커피도 줄였어요. 공황장애인 사람도 하루에 커피 한 잔 정도 마시는 건 괜찮다는데, 2~3잔을 마시면 그렇게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Q : 약을 먹다가 끊으면 어떻게 돼요
실제로 그런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그러면 50알을 써도 100알을 써도 약이 잘 안듣는대요. 보통 공황장애는 환자의 환경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데,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면 직장을 때려치우면 되고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이혼을 하면 되는데, 사람이 그렇게 살 순 없잖아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맞추려면 약을 1년 이상 꾸준히 먹어야 한다고 해요.

먹으면 갑자기 상황이 좋아지는데 ‘이제 안 먹어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다 보면 조금 있다가 약을 더 세게 쓰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약을 1년 동안 꾸준히 먹기로 결심했어요. 지금은 우울한 마음을 술로 푸는 일은 거의 없어요. 소주는 아예 안마시고, 맥주 한 잔 정도가 요즘 마시는 최고 주량이니까.

Q : 술 약속 없는 일상은 어때요
개인 트레이너에게 운동 지도도 받고 골프도 쳐요. 요즘 들어 하는 생각인데 내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새삼 느껴요. 건강한 일상이 체질인 것 같아요. 요즘 낙이 일주일에 한 번 아이스커피 한 잔 마시고, 방송하고, 집에 가서 책 보는 거예요.

Q : 불필요할 정도로 건전한 거 아니에요
일단 내 몸이 너무 피곤하니까 유흥을 안 해요. 그리고 관심이 건강에 꽂히니까 유흥으로 돈 쓰는 게 그렇게 아깝더라고요. 시간 날 때마다 두피 마사지 받고 한의원 가서 촉진받는 게 최고에요.

Q : 집안 문제가 오픈됐는데, 아내 반응은 어때요
이미 언론에 알려진 내용은 모르지만, 방송에서 제가 구체적인 얘기를 하는 건 신경 쓰이나 보더라고요. 방송에서 그동안 날린 돈의 액수도 얘기했거든요.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주변 사람들이 각각 알고 있는 액수가 다른 거예요. 오히려 이상한 루머로 퍼질 수 있어서 그럴 바엔 차라리 방송을 통해 오픈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집사람에게 다시 그 얘기가 화살로 돌아가는 면이 있어서 마음이 좀 쓰이기는 해요. 근데 집사람도 처음에는 그런 상황에 조금 당황스러워하다가, 그래도 자기가 잘못한 것이니까 인정하고 있는 편이죠. 이제는 경제관념 똑바로 갖고 살려고도 하고. 그래도 동현이가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라 크게 동요하지 않아 다행이에요.

Q : 그럼 아내가 날린 금액을 전부 갚아주는 건가요
그럼 어떡해요. 모른 척할 수 없잖아요.

사실 변호사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빌리거나 보증 선 것도 아닌데 아내의 빚을 갚아준다니. 엄연히 부부별산제인데 아무리 부부라도 아내가 부담한 채무는 아내 선에서 끝내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Q : 김구라씨가 연예인이라 그런가요
그게 아니라 제 집사람이 빌렸잖아요. 그중에는 차용증도 없이 빌린 사람도 많아요. 어쨌든 집사람이 5000만원 이상 갚지 않으면 구속된대요. 법적으로 재판하면 당연히 구속되는데 제가 집사람이 그렇게 되도록 볼 수는 없잖아요.

Q : 연대 보증을 선 건 아니니 그냥 갚아주는 거죠
근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집사람이 처형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렸는데, 뭐가 되었든 집사람이 돈을 빌려서 처형 것을 막아준 거니까 집사람 채무잖아요. 집사람이 채무자니까 내가 그걸 갚아줘야죠.

Q : 그런 경우에 위장이혼을 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어요. 동현이가 아직 어린데 그런 상황에서 이혼하기도 부담스럽고요. 액수가 너무 컸으면 저도 감당이 안 됐을 텐데 갚아볼 만하니까 갚아주겠다고 한 거예요.

Q : 다시 공황장애가 오면 어쩌려고요
그럴까 봐 예방 차원에서 미리 약을 먹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요즘 컨디션이 그다지 나쁘지 않아요.

Q : 그럼에도 스트레스 좀 받을 것 같은데요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이제는 좀 다스릴 줄 알게 된 것 같아요. 어쩌겠어요. 감정을 컨트롤하지 않으면 결국 내가 힘들고 죽겠는데. 나 살자고 이러는 거예요. 집사람이 사고친 지 벌써 2년이 됐으니 시간이 약인 것도 있고요.

Q :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나요
제 목표이자 희망은 방송을 쭉 하는 거예요. 재밌게 방송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싶어요. 노력하지 않을 때 더 힘들고 슬럼프가 오게 마련이거든요. 제가 살아가는 방식은 남들과 다를 게 없겠지만, 꿈꾸고 노력하고 시도하는 방식은 남들과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제 슬슬 시동 걸어야죠(웃음).

전화위복이랄까. 다행히 연말부터 흘러나온 김구라의 가정사에 대한 여론은 무척 호의적인 것 같다. 김구라의 독설 뒤에 숨어있던 아픔을 대중이 이해했다고 할까. 그런 아픔마저도 방송에서 셀프 디스로 승화시키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면모가 보인다. 김구라가 나의 방송 멘토이자 우상인 이유다.

글 강용석, 기획 여성중앙 정은혜, 사진 이동현(cao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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