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정말 무역역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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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미간에 경제문제로 다소불편한 관계가 예고되고 있다.
「설마」하던 미국의 대한 견제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부쩍 강도를 높여온 대한 수입자유화요구에 이어 컬러TV의 덤핑판정사태로까지 번졌다.
TV말고도 철강·양식기류등의 덤핑여부가 또 다른 불씨로 남아 있고 한국상품에 대한 일방특혜관세(GSP) 적용의 연장문제, 금융·보험의 대한진출요구등이 미해결의 문제들로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전망이다. 늘 호혜적일 것으로 기대했던 미국측의 태도가 사뭇 달라지고있는 것이다.
사태의 추이는 잘잘못이 어느쪽에 있건간에 상당부분 이미 「엎지른 물」로 현실화 되어가고 있고 해결의 실마리도 쉽사리 찾아질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그동안 양국사이에 얽혀 왔던 문제들이 한꺼버에 쏟아져나와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하고 있는듯한 분위기다.
사실 미국측의 이 같은 태도전환은 어느정도 예상되던 것이었다. 1천억달러에 달하는 무역수지적자에 따른 보호무역주의의 강화 무드속에 선거철을 앞둔 반덤핑 규제움직임이 대내적으로 급속히 확대되어 왔기 때문이다.
더우기 양국의 교역수지가 최근들어 한국등의 출초로 반전되자 미국측은 노골적으로 수입규제완화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고 「워커」 미대사를 비롯해 미정부당국자들도 기회 있을때마다 자국상품의 수입규제에 대한 불만과 한국상품의 덤핑수출을 경고해 왔었다.
특히 작년의 양국교역수지가 한국측이 19억7천만달러의 출초를 기록한 것이 심한알레르기반응을 일으켰고 연초의 「레이건」대통령방한을 계기로 한층 톤을 높여 한국측에 대해 수입개방읕 요구해 왔다. 현재 미국을 돌고 있는 우리측 구매사절단의 파견도 그러한 미측요구에 대한 성의표시였다.
그러나 우리의 대미수출증가가 과연 미국측에 타격을 안겨줄 정도였는지는 다시 따져볼 문제다. 상품교역의 경우·82년에 1억6천만달러 출초를 기록한 이 후 모처럼 흑자를 기록한게 사실이다. 그러나 무역외수지, 즉 한국에 나와 있는 미국기업들의 과실송금·이자수입·운임·여행수입등은 해마다 심한 적자를 보고 있다.
연도별 무역외 수지적자를 보면 △80년 12억달러 △81년 18억3천만달러 △82년 15억7천만달러 △83년 8억4천만달러등을 기록했다.
게다가 한국의 해외건설업체들이 건설현장에서 직접 미국으로부터 연간 평균 5억∼8억달러규모씩 사다쓰는 건설중장비 수입까지 포함시킬 경우 작년의 기록적인 출초도 실상은 간신히 본전장사를 한것에 불과했던 셈이다.
수치로 나타난 양국간의 수지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측이 한국경제를 보는 눈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베푸는 대상에서 견제를 해야할 경쟁상대국으로 보게 됐다는 점이다.
꾸준한 경제성장, 신발·TV등의 소나기식 수출에 대해 상당한 경계심을 발동하게끔 이르렀다.
그러나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이 어제 오늘일이 아니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누굴 원망할 일만도 못된다.
우선 한국경제에 대한 과대평가 자체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였다.
정부 스스로가 대내적으로 개도국 졸업을 선언했고 0ECD (경제개발협력기구) 가입검토등 선진국으로의 진입이 눈앞에 닥쳤음을 홍보해오지 않았는가.
특히 88올림픽·각종 국재대회개최등을 계기로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의 국력을 과시해 왔다.
덤핑판정으로 궁지에 몰린 컬러TV만해도 예비판정을 계기로 좀더 대책을 서둘렀더라면 이처럼 일을 어렵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미리미리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기엄들에 돌리고 있으나 이것 역시 온당치 못한 태도다. 정부의 수출정책 자체가 최근들어 부쩍 거칠게 드라이브를 걸어 왔고 그 결과 오히려 기업들의 과당경쟁을 정부자신이 유발해 왔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게 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것이 대만이다. 우리의 대미출초가 작년에 20억달러에 달했다고 야단들이지만 같은 기간동안 대만은 40억달러의 대미출초를 기록하고도 아무말이 없다.
수출상품의 경쟁력에서 뿐만 아니라 수출행위 자체에 대한 노하우 역시 대만이 우리를 앞서고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수출을 해도 우리는 거칠게 말썽을 일으키는데 반해 그들은 세련된 기술로써 조용히 실속을 챙겨왔다. 상술의 차이다. 대외홍보면에서도 우리가 보라는 듯이 경제성장을 자랑할 때 그들은 엄살을 부리면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전략을 썼다.
어쨌든 한미양국의 경협관계는 도마에 오른 문제들이 어떻게 매듭지든간에 종래와는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관계정립이 불가피해졌다. 원조경제에서 차관경제로 넘어온 이 후 최대의 파고를 맞고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에 대한 미국측의 오해를 시정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한국자신이 적절한 대응책을 미리미리 강구해 나가는 것이 더 시급한 당면 과제일 것이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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