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읽기] '일본의 김혜자' 지구촌 아이들 보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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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일본 작가 구로야나기 데쓰코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캄보디아의 어린 아이들. 탤런트로도 유명한 구로야나기는 한국의 김혜자씨처럼 지구촌 어린이들의 아픔을 껴안는다.

이상한 나라의 토토
구로야나기 데쓰코 지음, 오근영 옮김
랜덤하우스 중앙, 260쪽, 9800원

일본의 1호 탤런트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얻은 '창가의 토토'(프로메테우스)는 그가 마흔의 나이인 1981년 쓴 책이다. 어린 시절 받았던 대안교육의 현장을 돌아보며 수필처럼 써내려간 그 책은 전 세계 35개국 독자에게 전해졌다. 그러고도 세월이 또 훌쩍 흘렀다. 저자가 일흔을 넘긴 2003년, '창가의 토토'가 그의 인생에 남겨놓은 새 발자국이 '이상한 나라의 토토'에 담겼다.

1984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된 그녀는 굶주림과 전쟁의 고통 속에 방치된 아이들을 찾아다닌다. 그녀의 눈에는 참혹한 고통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하나씩 큰 기억을 새긴다.

그 기억 중에는 오랜 내전에 시달린 시에라리온의 소년병과 10살 나이에 부모가 살해되는 걸 지켜본 뒤 성폭행을 당하며 위안부처럼 살아온 소녀도 있다. 8년간 총을 쏘며 숱한 사람을 죽여봤지만 "밤에는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는 소년병은 영락없는 아이였다. 저자는 만신창이의 몸만 남은 고아가 되어버린 소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분명 생길 거야"라며 위로의 말을 던진다.

말 한마디의 위로뿐이었지만 소녀는 저자를 '엄마'라고 부른다. 배불리 먹었던 '(무려) 십여 년 전'의 기억을 절대 잊을 수 없다는 소말리아의 30대 여성. 그녀의 소원은 '아이들에게 음식을 조금이라도 사주는 것'이었다. 지독한 기아에 시달리는 소말리아의 아이들은 체중을 재기 위해 땡볕 아래에서 긴 줄을 늘어선다. NGO가 확보한 식량도 한정이 돼 있어서 평균 체중의 70% 이하인 아이들에게만 음식이 배급된다. 정상 체중의 70%에 미달하는 아이들은 먹을 것을 받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빈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체중을 재느라 늘어선 긴 줄 옆에는 아이들의 무덤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그러나 비극적인 기억만 남아있지는 않다. 여성 활동과 교육을 금지한 탈레반의 지배에서 벗어나 다시 학교에서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소녀들, '절대로 한 명도 죽게 하지 않겠다'며 폭탄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4000t 분량의 생필품과 의약품을 아프가니스탄 난민 캠프에 보급한 유니세프 사무소장…. 어둠 속에도 빛은 있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 활동 경험담만 담겨 있는 건 아니다. 살아온 인생이 길어서인지 과거를 이래 저래 손 가는 대로 쓴 문자 그대로 '수필'이다. 텔레비전의 역사 50년에 대한 회고, 부모님에 대한 기억, '창가의 토토'에 얽힌 뒷얘기, 일흔의 여배우로서 살아가는 현재의 이야기 등이 골고루 담겼다. 그러다 보니 얘기가 종종 옆길로 빠지는 듯도 하다. 그런데 이런 독자의 속마음을 미리 알아채기라도 한 듯 저자는 "옆길로 새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싫은 사람은 스트레스가 잘 쌓인다는 걸 아시는지?"라는 말을 적어놨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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