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목적지는 같았으나 길이 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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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
조재곤 지음, 푸른역사, 328쪽, 1만4500원

개화파의 영수 김옥균(1851~1894)을 암살한 홍종우(1850~1913). 그는 수구파의 사주를 받은 흉악범인가. 이 책은 그런 사회적 통념에 도전한다. 때문에 '홍종우를 위한 변명'이면서도 김옥균에 대한 애정 어린 이해로 읽힌다. 홍종우는 한국인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누구보다도 국제 감각에 앞섰다. 그런 지식인이 왜 우군일 수도 있는 김옥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을까. 저자가 추적하는 암살의 동기를 보면 김옥균과 홍종우가 추구한 세계관이 생각 만큼 다른 것은 아니었다.

둘 모두 조선의 근대화를 원했다. 단 방법이 달랐다. 홍종우가 볼 때 김옥균은 일본의 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 홍종우는 황제가 중심이 된 자주적 근대화를 이루려 했다. 그가 '묻지마 수구파'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상하이의 한 여관에서 김옥균을 암살한 후 청나라 경찰에 붙잡힌 홍종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조선의 관원이고, 김옥균은 나라의 역적이다. 김옥균의 생존은 동양 삼국(조선.청국.일본)의 평화를 깨뜨릴 우려가 있다." 조선으로 송환된 홍종우는 고종의 신임을 받으며 출세가도를 달린다. 일본의 간섭이 심해지는 1905년 이후 은둔에 들어갔으며 그 뒤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문제는 김옥균 제거 뒤의 조선이 홍종우가 원하던 자주적 근대화를 이루었는가이다. 결과를 놓고 보면 김옥균 암살 사건은 조선과 청나라에 악영향을 미쳤다. 일본이 조선과 중국 대륙을 본격 침략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저자가 아쉬워하는 것이 이 대목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만일 정적 암살이 아니라 상생을 모색했다면 한국의 근대화는 다르게 전개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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