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뒷전, 계열사는 상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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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최근 적립식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한 은행 지점을 찾은 김모씨는 창구 직원의 태도에 적잖이 실망했다. 같은 계열 운용사의 펀드를 강권하면서 다른 운용사 상품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결국 그 은행에선 펀드가입을 하지않고 증권사 창구로 발걸음을 돌렸다. 은행 창구직원이 권한 펀드의 수익률을 따져보니 다른 독립 운용사들에 비해 보잘 것 없었던 탓이다.

펀드를 판매하는 일부 은행과 증권사들이 좋은 펀드를 골라서 고객들에게 소개해 주는데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망한 펀드를 선별하기보다는 계열사 상품 밀어주기에 힘을 쏟는다는 것이다. 판매사들은 많게는 펀드 자산의 2%에 육박하는 판매수수료를 받고 있어 좋은 펀드를 고르지 못한 대가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돌아온다.

?판매사별 성적=대형 은행들이 주로 파는 계열사 펀드의 수익률은 별로 좋지 않다. 국민은행이 추천상품으로 권하고 있는 'KB스타적립식주식1'은 1분기 수익률이 8.4%에 그쳐 성장형 펀드의 전체 평균 수익률인 9.65%에 못미쳤다. 1년 수익률은 8.55%로 평균(8.11%)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이 펀드는 국민은행 자회사인 KB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펀드다.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에서 밀고 있는 조흥투신운용의 '미래든적립식주식투자1'의 수익률도 평균 수준에 미달하고 '신한미래설계적립식주식1'은 1년 수익률이 1.67%에 불과하다. '신한프레스티지고배당'이 13%대의 분기 수익률을 내 겨우 체면을 살리고 있다.

삼성증권도 '삼성웰스플랜80'을 비롯한 삼성투신운용의 펀드 수익률이 좋지않아 골치를 앓고 있다.

판매사의 선별력을 의심케 하는 경우도 있다. '국민은행 펀드'라고 불리며 적립식 펀드 바람을 일으켰던 '랜드마크1억만들기주식형'은 1년 수익률(2.68%)이 평균적인 펀드의 3분의 1 수준이다. 또 우리.한국씨티은행에서 팔고 있는 '템플턴그로스 주식형'의 경우 지난해까지는 성적이 괜찮았으나 최근 들어 수익률이 뚝 떨어져 투자자들의 원망을 사고 있다.

?변화 바람 인다=판매사의 계열사 밀어주기는 수익률을 비교하고 펀드에 가입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최근 펀드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래에셋 계열사의 펀드는 국민.조흥.하나은행과 대부분의 대형 증권사에서 팔고 있다.

마이다스자산운용의 마이다스블루칩배당주식C도 1분기 중 15%의 고수익을 올려 여러 금융사가 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처음부터 아예 가입할 펀드를 정하고 오는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며 "고객이 원하는 상품이 없으면 고객을 뺏기기 때문에 우량 펀드를 팔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제로인의 이재순 비계량평가팀장은 "똑똑한 투자자들이 많아지면 판매사들이 더 좋은 펀드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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