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독일의 '일본 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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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독일 경제가 일본과 흡사한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영(0)에 가까운 인플레율, 계속되는 저(低)성장, 국채 수익률의 하락세, 침체된 주식 시장, 그리고 지속적인 디플레이션 현상을 고려하면 이같은 우려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현재 독일 경제는 일본의 경제 침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1990년대 초반과 매우 비슷한 면을 보이고 있다.

*** 심각한 株價 폭락·은행 시스템

10년에 걸친 일본의 장기 불황은 39년 세계 대공황 이후 진보를 거듭해 온 세계 경제에 나타난 가장 지독한 악재로 지목되고 있다. 일본의 실업률과 국가채무 부담은 모두 두배씩 뛰어올랐고 재정시스템은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

90~92년 주식시장의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이 아직까지 성장세로 돌아서지 못하게 된 이유로 네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첫째 '오버뱅킹'(은행이 지나치게 많은 현상). 수많은 민간은행들이 적자에 시달리게 됐고 국영은행 위주의 정부 정책은 은행 업계 전체에 걸쳐 기강해이를 초래했다.

둘째, 수요가 줄어들고 민간부문 부채 부담은 가중되는 시기에 금융.재정을 지나치게 조였다는 것이다.

셋째는 일본 국민들의 정치.경제적 수동성이다. 경제 위기로 몰고간 정치인을 재선출하고 단순히 더 절약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위험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개방, 즉 새로운 아이디어와의 경쟁 혹은 국제적 연대와 압력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다.

독일은 확실히 '일본 신드롬'의 첫번째와 두번째 증상을 보이고 있다. 독일의 은행 시스템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으며 이는 올해 들어 더욱 명백해졌다.

민간은행들은 턱없는 자본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독일 저축은행(Sparkassen) 등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은행들은 공익사업분야 등 시장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은행은 새로운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게 되고 저축자와 은행 소유주에게 돌아오는 이윤은 낮아지는 등 금융권 부실을 키운다.

거시경제 정책의 도입은 독일의 현 상황에서 적절한 대응책이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독일의 디플레이션이 유로존과 세계 경제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이같은 태도는 독일이 유로 강세로 인해 수출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지적된 이후에도 ECB가 인플레에 대한 우려를 내세워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독일 정부가 긴축정책을 쓴다면 이는 수요 위축, 은행 부실 심화로 이어지면서 경제 침체를 가속화할 것이다.

일본 신드롬의 셋째 증상인 수동화 경향도 독일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유럽 최대 전화회사인 도이치텔레콤(DT)의 지속된 주가 하락세는 독일인들로 하여금 저축을 늘리도록 만들었으며 은행의 부실로 이윤이 줄어든 것도 감수하게 했다.

지난해 9월 총선과 2월 니더작센주(州)와 헤센주의 지방의회 선거는 모두 낮은 투표율을 기록, 유권자들이 경기침체를 정치인들만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 긴축정책땐 침체 가속 불보듯

독일과 일본의 주요한 차이점이며 독일 경제 구제의 원천으로 제기되는 것은 바로 독일 경제의 국제적 융합과 협력이다.

외국 자본을 환영하고 다국간 상호 자유무역주의 체계를 구축 중인 유럽연합(EU)의 회원국으로서 독일은 외부로부터 건설적인 압력을 받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독일 정부는 국제적 의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자국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라는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독일 경제 상황-붕괴된 주식시장, 오버뱅킹, 미시경제 정책의 둔화 등-에서 독일이 제2의 일본이 될 가능성을 차단하려면 독일 정부는 은행 시스템의 근본적인 해결과 함께 ECB에 금리인하 압력을 행사하는 등 유로존에서 경제 팽창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할 것이다.

애덤 포센 미 국제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정리=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