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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책임지게 … 미국처럼 법안에 의원 이름 붙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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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베인스-옥슬리(SOX)’법은 미국 기업의 회계규정을 대폭 강화한 법안이다. 법안의 정식 이름은 ‘상장회사의 회계 개선 및 투자자 보호법’이지만 법안 발의자인 폴 사베인스(민주당) 상원의원과 마이크 옥슬리(공화당) 하원의원의 이름을 따 주로 SOX법으로 불린다.

 미국은 발의한 의원 이름에서 법안명을 따오는 경우가 많다. 상표법인 ‘랜험법’, 반독점법인 ‘셔먼법’ 등이 대표적이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최윤철 교수는 “미국의 경우 법안을 발의할 때 책임감을 주기 위해 법안에 의원 이름을 넣는다”며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이 법적 책임은 지지 않지만 해당 법안은 의원들을 따라다니며 정치적 책임을 지게 한다”고 말했다.

 한국도 미국처럼 법안실명제를 위한 제도적 틀은 이미 마련돼 있다. 2000년 2월 국회법이 개정되며 발의법안의 부제로 의원 성명을 기재하고 가결된 법안을 홍보할 때 부제를 표기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현재 이 제도는 유명무실해졌다. 지금까지 논란이 됐던 법 가운데 의원 이름을 딴 건 ‘오세훈법’이 유일하다.

 법안 발의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없다 보니 의원들의 법안 발의는 매년 늘고 있다. 19대 국회는 지난 3년간 1만3046건을 발의했다. 17대 국회의원이 4년간 발의한 법안(6387건)의 두 배가 넘는 법안을 쏟아낸 셈이다. 하지만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의 가결률은 21%(17대)에서 11.7%로 떨어졌다.

 의원 발의 법안 중 위헌심판 대상이 된 법안도 늘고 있다. 법률신문이 헌법재판소 출범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위헌 결정 난 법안을 분석한 결과 의원 발의 법안(254건)이 정부 발의 법안(216건)보다 많았다. 위헌 결정 난 법안은 14대 국회 66건, 15대 63건, 16대 40건, 17대 99건, 18대 32건 등이다. 졸속심사나 여론에 떠밀려 ‘국민정서법’을 통과시킨 결과다.

 이현출 국회 입법조사처 심의관은 “한국은 7~10명 정도로 구성된 법안심사소위만 통과하면 이후에는 무사통과인 데다 당론에 의한 투표까지 더해지다 보니 위헌 소지가 많은 법안도 그냥 통과되는 경우가 많다”며 “미국은 법안을 심사할 때 7~8단계를 거치며 꼼꼼히 심사해 위헌 소지가 있는 법안을 미리 걸러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입법실명제를 강화하고 법안 심사 과정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익대 음선필(법학) 교수는 “의원들의 책임 있는 입법 태도가 중요하다”며 “입법 시 각 분야에 미칠 영향을 미리 살펴보는 ‘입법 사전평가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법안에 자신의 이름을 달 정도로 충실히 준비해 법안을 발의·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이상민(새정치민주연합) 법사위원장은 “국회는 가속도가 붙은 여론의 브레이크를 밟는 곳이어야 하는데 그동안 내용검토도 제대로 하지 않은 작명법안이 올라와도 함께 여론의 광풍에 휩쓸리고 말았다”며 “앞으로 인명을 딴 국민정서법안이 법사위에 오면 더욱 철저히 법안심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강민석 부장, 강태화·현일훈·이지상·김경희·안효성 기자 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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