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중국 전문가 니콜라스 라디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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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미(小米)같은 중국 민간 기업들이 애플 삼성 등 해외 기업들의 파이를 더 뺏어갈 것이다”

미국서 이름 높은 중국 경제 전문가 중 한 명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니콜라스 라디(69) 박사의 말이다. 지난달 27일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 보아오(博鰲) 포럼에서 인터뷰에 응한 라디 박사는 “중국 경제는 둔화하지만 생산성이 높은 민간기업 덕에 경제는 안정적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진핑(習近平) 정부도 사업하는데 있어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거나 없애는 등 일련의 조치로 민간 기업의 성장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말도 잊지 않았다. 실제 보아오 포럼에서 열린 민간기업 라운드 테이블에선 중국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해 “정부가 행정업무에 편의를 제공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공언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라디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대형 국유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4%인 반면, 비용은 6~7%에 달한다. 즉, 버는 것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중국 민간기업은 국유기업보다 평균 두 배 이상 생산성이 높고 비용은 적게 든다. 방만한 국유기업에 비해 민간기업은‘군살 없는’ 체질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는 “시진핑 정부는 석유화학·금융·통신 등 사실상 자연독점됐던 국유기업의 세 가지 부문을 우선적으로 민간 기업에 열어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고 있다”며 “기업간 경쟁을 촉진해 국유 기업도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게끔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디 박사는 민간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중국이 말하는 ‘뉴노멀(신창타이·新常態)’의 한 단면이라고 짚었다. 고속성장에서 중·고속성장 시대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신창타이의 중심엔 중국 민간기업의 발전이 원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기업의 체질개선이 외국기업에는 위협이 된다. 라디 박사는 “샤오미와 같은 중국 민간 기업들은 향후 혁신으로 생산성을 높일 것이고 이들이 몇 년 내로 세계 시장점유율을 더 뺏어갈 가능성은 당연히 크다”고 말했다. 삼성·애플 등 굴지의 거대 기업들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짚었다.
중국 경제 전망을 묻자 그는 “6~7%대 성장세는 유지할 것이며 일각의 우려처럼 경착륙하거나 중등 소득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중산층의 소비가 경제를 떠받칠 것으로 봤다. 과거에는 국가가 주도하는 대규모 투자가 성장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중국 국민의 주머니가 넉넉해지면서 소비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중국에서 임금상승을 통한 가처분소득이 증가세에 있으며 국민 1인당 소비도 늘고 있다. 여기에 개인 저축률도 2010년 정점을 찍은 뒤 내려가고 있다. 돈을 모아 깔고 앉아 있던 중국인들이 지갑을 열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 소비시장의 확대에 모두가 혜택을 본다는 건 아니다. 라디 박사는 “중국서 소비가 늘어난다고 무조건 럭셔리 제품이 많이 팔리고 떼돈을 벌 거라 착각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프라다·루이비통 등 유럽의 일부 소비재 기업만 혜택을 보고 그마저도 아주 적은 비중이다”고 말했다. 한국이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경제 하나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경고로 들렸다.

그의 분석은 중국 경제와 관련해 산업별로 수혜 분야와 비(非) 수혜 분야의 명암이 확실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철강처럼 중국이 과잉생산한 제품을 해외 시장에 마구 쏟아내 가격 하락을 부추기는 분야는 피해가 크다고 짚었다. 그는 “미국 내에서도 중국이 곡물 수입을 크게 늘릴 거라며 기대감이 높지만 중국 전체 수입에서 곡물은 10%도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과열이 잦아든 것은 경제에 좋은 신호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35년간 중국 부동산 경기가 과열되었으며 그 정도가 비정상적이었다”고 말했다. 5년전만 해도 중국의 부동산 투자는 연 33%씩 늘었다. 이 속도는 지난해 10.5%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경제성장률(연 7.4%)을 웃도는 수치다.

그는 최근 화제가 된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에는 회의적이었다. 라디 박사는 “재미있는 구상이지만 디테일은 별로 없고 그 가치를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지정학적 문제를 안고 있는 파키스탄 등도 일대일로에 포함돼 있는데 과연 물리적으로 연결이 가능할까”라고 되물었다.

그는 “진리췬(金立群) AIIB 임시사무국 사무총장이 AIIB가 상업적 활동을 해서 수익(return)을 참여국에게 돌려준다고 했지만 운영 모델이 어떤지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대일로 인프라 건설 수요 하나에만 ‘올인’하는 것보다는 중국인들의 고민이 반영된 다양한 산업에서 수혜 포인트를 찾는 것이 현명하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면 스모그 등 환경 문제, 중진국으로 이행하면서 한층 많아진 교육 수요, 깨끗하고 안전한 먹거리, 건강한 노년의 삶, 미용 등에 중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진 건강 관련 소비수요 확대를 주목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인터뷰를 맺으며 그는 저서『사회주의를 넘어 자본주의로(Markets over Mao)』에 사인을 해줬다. 뉴노멀 경제로 이행하고 있는 중국에서 민간 기업의 부상을 다룬 이 책은 지난해 영문판 출간에 이어 4월에는 중국어판으로 번역되어 중국 독자들과 만나게 된다.

보아오=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니콜라스 라디는...

미국 내 중국 전문가이며 초당적인 미국 외교 정책·국제 정치 문제 연구 기구인 외교협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차이나 리뷰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 1968년 위스콘신 대학을 졸업하고 1975년 미시간대학 경제학박사를 거쳐 1975~1983년 예일대학 부교수를 지냈다. 1985~1995년 워싱턴대학 교수에 이어 1995~2003년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에서 중국 문제 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사회주의를 넘어 자본주의로(Markets over Mao)(2014년)』『금융위기 이후의 지속 가능한 중국경제성장(2012년)』『중국 외환정책의 미래(2009년)』『중국의 세계경제 통합(2002년)』『중국의 끝나지 않은 경제혁명(1998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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