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애착과 집착의 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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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소중히 간직하는 물건이 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낡은 시계나 반지,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장난감이나 인형, 구석구석 손때 묻은 구식 카메라 등이 그렇다. 남들 보기에는 낡고 쓸모 없더라도 우리 뇌는 자신만의 특별한 추억이나 사연이 있는 물건을 가치있게 느낀다.

예를 들어 어떤 바이올린 연주자는 자신이 오랫동안 정성껏 길들여온 바이올린의 가치를 과거 악기점에서 구매한 가격과 동일하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연습하며 흘렸던 땀과 노력이 바이올린에 스며들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뇌가 어떤 물건에 주관적 의미를 부여하면 그 물건의 가치가 상승하는데, 이를 애착효과라고 한다. 객관적으로 동일한테 특정 물건에 대해서만 더 높은 가치를 느끼는 건 주관적으로 의미부여를 한 결과이며, 그 물건에 개입한 애착감정 때문이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주관적 의미를 부여하고, 많은 사람이 그 의미를 인정하면 물건 가치가 폭등하는 이유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A. 한국야구위원회 공인 야구공
B. 이승엽 선수의 통산 300호 홈런볼

A와 B는 모양과 재질이 객관적으로 동일한 야구공이다. A의 가치는 6000원 정도지만 B의 가치는 무려 1억 2000 만원에 달한다. A에 비해 B가 물리적으로 ‘특별한 기능’을 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이 ‘300호’라는 데 주관적 의미를 부여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기에 B의 경제적 가치가 A보다 2만 배 폭등한 것이다.

비틀즈 멤버였던 존 레넌이 과거 치과치료를 위해 뽑았던 어금니는 한 경매장에서 3500만 원에 팔리기도 했다. 뽑은 어금니는 물건으로써 기능적 유용성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의미부여를 통해 가치가 높아진 것이다.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모양과 재질, 금전적 가치가 완벽히 일치하는 ‘돈’에도 주관적 의미를 부여하고 종종 다른 태도를 보인다. 다음을 보자.

A. 우연히 주운 5만원
B. 힘들게 번 5만원

A와 B의 가치는 완벽히 일치한다. 그러나 우리 뇌는 무의식적으로 ‘공짜’와 ‘고생’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느끼는 가치는 매우 다르다. ‘공짜’로 얻은 5만원은 주머니 속에 아무렇게나 보관되다가 저녁 술값으로 지출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고생’해서 번 5만원은 지갑 속에서 고이 보관되다 조금 더 의미있게 지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물건을 거래한 경험이 많아질수록 우리 뇌는 주관적 의미부여 습관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한 연구자가 야구카드 거래대회를 관찰했더니 처음 거래하는 사람은 보유 카드 팔기를 꺼려한 반면 거래경험이 쌓일수록 그런 망설임이 사라진다는 걸 발견했다. 거래를 목적으로 할 때 우리 뇌는 물건을 그저 이익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감정이 개입할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에 대해 굳이 객관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무의식 속에 애착감정이 굳게 자리잡는 한 우리 뇌는 객관적 판단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필요이상의 가치부여와 과대평가가 지속되면 애착은 집착이 된다. 충분히 심사숙고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선택은 감정이 결정하고 생각이 그 이유를 만든다. 중요한 선택에서 애착감정이 마음 속에서 요동칠수록 판단에 신중해야 한다. 애착과 집착은 한 뼘 거리에 있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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