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건강 해치는 담배, 조선시대도 시끄러웠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담바고 문화사
안대회 지음, 문학동네
480쪽, 3만원

스러져가는 모든 것은 애잔하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요즘, 지는 해처럼 연민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담배가 있다.

 광해군 시절인 1610년 무렵 이 땅에 등장한 담배는 현대적 흡연이 시작된 1910년 즈음까지 300년 동안 ‘담바고’로 불렸다.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한창 유해 논쟁에 휩싸인 현대적 담배가 아닌, 역사적 대상으로서 ‘담바고’의 인문학적 실체를 살폈다. 지은이는 조선의 문헌 속에서 담바고와 관련한 사연이 참으로 풍성하다는 데 주목한다. 그 시절 문화와 예술, 사회와 경제, 의식과 풍속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다.

 조선 지식인들은 시를 포함한 수많은 글에서 담바고를 다뤘다. 이를 살피면 당시 흡연율을 짐작해 볼 수도 있다. 17세기 후반 신망규(申望奎)는 문집 『송와일고(松窩逸稿)』에 수록된 ‘남초음(南草吟)’에서 “담배를 즐기는 이가 열에 여덟이 넘는다”라고 했다. 80%에 이른다는 추정이다. 18세기 인물 이덕리(李德履)는 『기연다(記烟茶)』에서 “전국에 360만 명의 흡연자가 있다”고 했다. 당시 인구를 1500만으로 본다면 넷 중 하나가 장죽을 물고 다닌다는 이야기다. 구한말인 1906년 지석영이 발표한 기고문은 당시 2000만 인구 중 1000만 명이 흡연자라고 했다. 절반이 핀다는 이야기다.

 조선인들은 담바고의 자연과학적 특성도 충분히 이해했다. 독성을 잘 파악해 살충제로 쓴 것은 물론 일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이다. 담배에 든 니코틴 성분은 40~60㎎이 치사량이다. 한 개비의 담배만 정제해도 나오는 양이다.

 외국 문물 교류를 매개하기도 했다. 추사 김정희는 베이징에 가는 역관 오경석에게 편지를 보내 코담배를 구해오라고 부탁했다. 콧구멍에 대고 향을 맡거나 들이마시는 가루담배다. 유럽에서 상류사회의 기호품이던 것이 비슷한 시기 동아시아까지 유입된 것이다.

 사실 담배의 유해 논쟁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조선 후기에도 벌어졌기 때문이다. 개인 건강은 물론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며 사치와 나태함을 조장하고 화재를 부른다고 했다. 아이들과 여성도 장죽을 물고 다녀 풍속을 해친다는 지적도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상황이다. 담배를 살아있는 역사라 부를 만하지 않은가.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