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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교사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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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중1 때의 일이다. 아주 권위적인 미션 스쿨을 다녔다. 교풍은 엄했고, 재단 이사장은 하늘 같은 존재였다. 토요 조회 직전 아이들이 운동장 교단 위에서 놀았다. 누군가 이사장 의자에 앉았던 모양이다. 어디선가 불호령이 떨어졌다. 중3 사회 과목을 담당하던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은 삽시간에 흩어졌고, 상황 파악이 안 된 나를 포함한 몇몇은 그 자리에 무릎이 꿇려졌다. 그리고 수차례 뺨과 머리를 얻어맞았다. 왜 맞는지도, 무엇이 잘못인지도 몰랐다.

 요즘 같으면 신문에 나올 가혹행위였지만 담임 등의 무마로 넘어갔다. 전해 들은 바로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수차례 낙방한 뒤 멘털에 문제가 많아 교사들하고도 문제가 잦은 인물이니 이해하라, 뭘 어쩌겠느냐’는 요지였다. 그때까지 장래 희망이 교사였던 나는 꿈을 바꾸었다. 커서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에 교사를 올렸다.

 갑작스레 옛 얘기를 꺼내는 것은 요즘 인기인 재즈영화 ‘위플래쉬’ 때문이다. 최고의 드러머를 꿈꾸는 음대생 앤드루와 그를 트레이닝시키며 사지로 몰고 가는 교수 플레처, 둘의 위험한 대결을 그린 영화다. 플레처는 앤드루를 괴롭히고, 함정에 빠뜨리기도 한다. 물론 이 영화는 사제지간에 방점이 찍힌 영화는 아니다. 예술이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정도의 파괴적 열정과 광기에 대한 영화다. 엔딩에 폭발적 연주를 선보이는 앤드루에게 플레처는 처음으로 웃어 보이는데, 그 또한 ‘악마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말로 읽힌다.

 작은 예술영화임에도 예상 밖의 빅히트를 하자 각종 분석이 나온다. 음악영화라기보다 교육영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해석이 많다. 한 평론가는 “제자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미친’ 교육법의 승리에 무한경쟁 시대 대중이 열광한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평론가는 “이 영화를 폭력적 교육법에 대한 영화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한국적 오독”이라고 평했다.

 이 영화를 ‘미쳐야 미친다’류의 예술적 ‘똘끼’를 다룬 영화로 보든지, 아니면 스파르타식 교육법에 대한 영화로 보든지 그건 관객의 자유다. 어쨌든 새삼 한국 사회에 교육이 얼마나 민감한 화두인지 확인시킨 건 분명하다. 누구에게나 있는, 플레처 못잖은 폭력 교사에 대한 트라우마를 떠올리게도 했다.

 단 일부의 해석처럼 폭력적 교육법을 찬양했단 말을 감독이 전해 들으면 상당히 억울해할 것 같다. 또 플레처를 참스승으로 추어올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또한 문제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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