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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시인 조명암 詩전집 나왔다

중앙일보

입력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 그리운 내고향 목포는 항구다…'로 시작하는 가요 '목포는 항구다'는 1942년 만들어져 가수 이난영의 독특한 고음을 타고 지금도 인기를 끄는 노래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 노랫말의 지은이가 월북 시인 조명암(趙鳴岩.1913~93)이란 사실이 알려진 것은 불과 몇 해 전의 일이였다. 조명암의 본명은 영출(靈出)로 그는 48년 월북할 때까지 5백여 편의 가요를 작사한 해방 전후 최다 작사가였다.

그의 작품으로 알려진 대표적 가요로는 '꿈꾸는 백마강''알뜰한 당신''선창''낙화유수''울며 헤진 부산항''서귀포 칠십리''고향초''바다의 교향시'등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의 시와 노래 가사를 모은 '조명암 시전집'(선 출판사)이 최근 출간돼 화제다. 조명암이 해방 전 신문 잡지에 발표한 작품과 분단 이후 북한에서 발간한 '조영출 시전집'(1957)에 실은 시, 그리고 그가 작사한 5백여 곡 가운데 고른 2백여 편의 노래가 실려 있다. 오는 23일 오후 6시30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출판기념회도 열 예정이다.

조명암의 시는 모더니즘과 민족주의를 결합한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조명암 시전집'을 편집한 이동순(영남대 국문과) 교수는 "시 작품이 그리 많치 않은 우리 근현대문학사에 1930년대 활동한 뛰어난 모더니즘 시인을 한 명 더 추가하는 의미가 있다"면서 "조명암의 민족주의 성향은 만해 한용운에게서 배운 영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명암은 한때 승려 생활을 했고, 만해의 도움으로 보성고보에 입학해 신학문을 배웠으며 일본 와세다 대학에 유학하기도 했다.

그가 사회주의 성향을 보인 것은 해방 이후. 45년 8월 그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에 참여하고, 이어 48년 월북한 후 북한에서 문화부 부상(차관)을 지내는 등 고위직을 역임하다 93년 타계했다.

조명암의 시보다 대중적으로 더 가까운 것은 그의 가요 노랫말이다. 조명암의 노랫말은 그 시적 유려함으로 인해 '가요시(詩)'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질적으로도 우수하다는 평을 받는다.

반야월(작사가.한국가요예술작가동지회 회장)씨는 "식민지 시대 우리 겨레의 가요시장을 개척해 영원히 빛나게 한 가요시의 시성(詩聖)"이라면서 후학들에겐 가요시의 교과서 역할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동순 교수는 "다양한 필명을 사용했고, 또 월북 후 남쪽에선 그의 이름을 언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품을 찾아내는 일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면서 "조명암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까지 모두 합하면 대략 9백여 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보천보 경음악단’에서 음악지도를 하는 조명암(의자에 앉은 사람).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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