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보선 돌발 하야 성명 … 김용식 '외교 논리'에 퇴진 번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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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5·16 나흘째인 5월 19일 돌발사건이 있었다. 오후 8시30분 윤보선(사진)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전날 장면 총리 내각이 총사퇴한 지 32시간 뒤다. 성명은 이러한 내용이었다.

 “덕이 없는 사람이 국가원수직에 있어 국민의 마음과 생활을 평안치 못하게 했다. 군사혁명 발생에 이르게 한 모든 현실을 국민에게 부담시켜 죄송스럽다. 하늘이 도와 무사하게 이 나라 일을 혁명위원회 사람들이 맡아 보게 했고, 국민 여러분이 커다란 기대를 갖고 있음을 알게 돼 안심하고 이 자리를 물러나겠다.”

 김종필(JP)은 그날 밤 뒤늦게 소식을 접했다. 그는 즉시 김용식 외무부 차관에게 전화로 물었다. “대통령이 하야하면 외교적으로 문제는 없습니까.” 김 차관은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지금 헌법기관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오직 대통령 한 사람입니다. 내각이 총사퇴하고 국회도 해산됐기 때문에 대통령이 없으면 대한민국은 수교국한테 새로이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하야성명을 번의하게 해야 합니다.”

 이날 저녁 장도영 의장과 박정희 부의장은 청와대로 윤 대통령을 찾아갔지만 퇴진의 뜻을 꺾지 못했다. JP는 박 소장을 찾아가 대통령 궐위 때 생길 외교문제를 보고했다. JP는 박 소장의 승낙을 얻어 김 차관에게 이렇게 전했다. “김 차관이 직접 청와대로 올라가서 윤보선 대통령에게 결심을 바꿔야만 국가 외교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얘기하십시오.”

 김 차관은 다음날 오후 2시 청와대를 찾아갔다. 윤보선 회고록 『외로운 선택의 나날』에 따르면 김 차관은 “ 하야하면 외교상으로 거의 무정부상태가 된다. 당장 북한이 남침하면 속수무책이다”고 그를 설득했다. 이 말에 윤 대통령의 하야 결심이 흔들렸다. “국가의 운명이 달린 문제란 말에 마음 한구석에서 동요가 일었다”는 게 그의 회고다. 결국 윤보선 대통령은 그날 5시40분 기자회견 자리에서 “하야를 번의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1962년 3월 22일 두 번째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청와대를 떠난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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