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쏟은 정성 배신으로 돌아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23일 "예사로 살면 그만인데, 남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도 보람을 느끼지 못하거나 그 사람이 고마워하지 않고 또 다른 트집을 잡으며 배신을 할 때 여러분은 그런 것을 어떻게 이겨 나가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강금실(康錦實)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문재인(文在寅)민정수석, 교정(矯正)대상 수상자인 배정배 광주교도소 교감, 차혜옥 마산교도소 종교위원 등이 참석한 오찬자리에서다.

盧대통령은 이어 "쏟은 정성이 배신이나 효과없음으로 돌아올 때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는 것을 모두에게 질문으로 던지고 싶다"고 비슷한 얘기를 되풀이했다. 이날의 자리 성격이나 전후 발언 맥락에서 보면 굳이 이런 얘기를 할 상황도 아니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盧대통령의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21일)는 발언과 같은 심경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했다. 盧대통령의 안타깝고 고민스러운 심경의 한 자락이 다시 표출된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한 핵심참모는 "집권기반을 굳혀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흔들어대는 기존 지지층에 대한 야속함이 배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윤태영(尹太瀛)대변인은 "대통령의 언급은 상황 전반을 일반적으로 말한 것"이라면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며 곤혹스러워했다.

사실 盧대통령은 요즘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형국이다. 노조와 전교조, 공무원노조와 한총련 등은 힘으로 요구를 관철하려 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친형 건평씨의 부동산 문제로 盧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검찰이 '동업자'격이었던 최측근 안희정(安熙正)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한 것도 부담이다.

여기에 기존의 지지층은 盧대통령의 '실용주의 외교'를 '굴욕외교'라고 비판하면서 이탈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현정권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쉽게 지지층으로 돌아서지는 것도 아니다. 국정 장악력과 갈등 조정능력에 대한 여론의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날 盧대통령은 교정 대상자들에게 "여러분의 일상생활은 그야말로 감옥살이일 것"이라며 "청와대에 들어와 보니 자유가 좀 없다. 가끔 감옥살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盧대통령은 잠시 '탈출구'를 찾기로 했다. 이날 밤 盧대통령은 권양숙(權良淑)여사와 수행원 몇명만 대동하고 경남 저도에 있는 군 휴양지인 '청해대'로 내려갔다. 25일까지 2박3일간 이곳에서 머리를 식히면서 자신이 던진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골몰할 것으로 보인다.

강민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