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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의 댄서와 훈남 댄서 파워풀 군무로 새 모습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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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호 16면

이선태(위)와 안남근(아래)

봄은 춤의 계절이다. 겨울잠을 자던 무용단체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켠다. ‘무용계 아이돌 군단’ LDP무용단도 신작 2편(‘12MHz’ &’Graying’ 4월4~5일 LG아트센터)을 동시에 발표한다. 파워풀한 에너지와 대중과의 친화력으로 현대무용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LDP와 세계 무용계 트렌드를 꾸준히 소개해 온 LG아트센터의 첫 만남이다. 현재 프랑스 엠마누엘 갓 컴퍼니에서 활약중인 김판선과 최초로 외국 무용단에 정규 레퍼토리로 수출된 LDP대표작 ‘No Comments’를 만든 신창호가 안무를 맡고, 스타 무용수들을 총동원한 야심작이다. TV 프로그램 ‘댄싱9’의 여파로 현대무용계에 유례없는 대중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지금, 댄싱9 돌풍의 주역 LDP는 어떤 무대로 그 시선을 붙들어맬까. 댄싱9 시즌1과 2에서 각각 팀우승을 차지하며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무용수 이선태(27)와 안남근(29)에게 미리 들어 봤다.

LDP무용단 스타무용수 안남근·이선태

촬영용으로 흰 셔츠를 준비해 오라고 했다. 방송도 타고 인기도 얻었으니 알아서 세련되게 입고 올거란 믿음은 터무니없었다. 급히 빨아온 듯 주름진 셔츠에 잠시 당황했지만 촬영이 시작되자 납득이 갔다. 안남근과 이선태는 여전히 날것 그대로의 무용수인 것이다.

심지어 둘은 LDP에서 가장 바쁜 무용수다. 19일 오후 3시로 일정을 간신히 맞췄다. 안남근은 낮 12시부터 4월 18일로 예정된 대전예술의전당 ‘풀치넬라’ 연습을 마치고 왔고, 이선태는 오후 5시부터 본인이 안무로 참여한 무용극 ‘Sadness’ 리허설에 참여해야 했다. 6시부터 자정까지는 LDP 리허설. 틈틈이 강의도 나가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LDP공연이 최우선”이라는 이들은 두 작품에 다 출연한다.

‘12MHz’는 다양한 관계의 대립에서 나오는 파장을 주파수에 비유한 작품. 무용수 12명이 주파수가 되어 공간에 퍼지는 감정의 소리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Graying’은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 파워풀한 남성군무의 향연이다. “한 무대에 서지만 두 안무가의 성향은 정반대”라는 것이 이들의 이구동성. 신창호는 논리적이고 김판선은 직관적이란다.

“판선이형 작품은 소재도 움직임도 낯설지만 배울 게 많아서 좋아요.”(안) “너무 직관적이라 자꾸 바뀌는 통에 힘들어요. 한번 정한 거 바꾸는 걸 싫어하거든요.”(이) “저도 작업방식은 맘에 안들어요.”(안) 거침없는 직설화법이 왠지 무용수답다.

솔로나 특정 역할을 맡았나요.
안: 이번엔 개개인은 거의 드러나지 않아요. 군무가 많죠. 뭔가 주목받는 느낌은 없네요.
이:‘그레잉’은 다같이 노화를 표현하는 거고, ‘12MHz’는 원래 캐릭터가 다 있었어요. 개개인의 주파수가 있어서 처음엔 본인 캐릭터를 찾아가나보다 했는데, 하다보니 우리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의 주파수가 됐네요.(웃음)

현대무용은 스토리가 없어 어려운데, 관전 포인트를 짚어준다면.
안: ‘12MHz’는 음악과 무용수들의 조화가 재밌을 것 같아요. 사실 재밌을거 같진 않은데 이렇게 말해야 하죠(웃음). ‘Graying’은 힘찬 군무가 포인트인데, 늙어가는데도 흥이 있다는 이야기 같아요. 어르신들의 으쓱으쓱 흥겨운 춤을 재해석한 거에요.
이: ‘12MHz’는 연구결과를 본다는 관점이면 좋을 것 같아요. 신체로 주파수나 사운드를 표현하기 위해 전류나 주파수가 만나 스파크 내는 것이 어떻게 보여지는지 연구를 많이 했거든요. ‘Graying’은 파워풀한 군무가 7분동안 전혀 안 쉬고 가는게 핵심이에요.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어지는데 그 자체를 보여주려는 것 같아요. 우리가 굉장히 힘들어하길 바라시죠.(웃음)

순수한 작업 욕심으로 똘똘 뭉친 LDP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출신들이 뭉쳐 창단한 LDP는 그간 이용우, 차진엽 등 많은 스타 무용수를 배출했다. 외부에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여전히 한예종 출신이 주류. 아카데믹한 움직임 보다 활동영역이 유연하고, 돈이 목적이 아니라 순수한 작업에 욕심있는 사람들이 모인단다.

댄싱9에 적극 출연하며 무용계 분위기를 대중지향적으로 쇄신하고 있는 것도 예술계 특유의 경직된 분위기가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 기반한 단체는 거의 교수가 대표나 예술감독을 맡지만 한예종은 교수가 자문위원 정도만 맡아요. LDP도 동문단체인 셈인데 멤버들끼리 이끌어가죠.”(이)

그런 분위기는 작품에도 드러난다. 스스로 안무가이기도 한만큼, 모두가 자기 생각을 더해 함께 만들어간다. “무대에서 개성이 강해보이는 이유가 있어요. 그 장면만큼은 자기가 만든거니까요”(안)

느릿한 말씨에 왠지 정이 가는 두 사람은 둘 다 충청도 출신. 안남근은 대전예고, 이선태는 충남예고를 나왔지만 무용계가 워낙 좁아 고교시절부터 아는 사이다. “형이 워낙 유명했어요. 제일 잘하는 축이었거든요. 레슨 선생님이 형 선생님이랑 같은 학교라서 주말에 서울에 레슨 오면 같은 홀에서 하기도 하고, 찜질방에 자러 가면 마주치기도 했죠. ‘와, 안남근이다’하고 쳐다보면 항상 기본동작을 하고 있더라구요.(웃음)”(이)

탁월한 비주얼로 유명한 이선태는 뽀송한 아기피부보다 재미난 말투가 인상적이다. 방송에서 ‘마성의 댄서’라는 별명을 얻은 안남근에겐 역시 설명 불가한 매력이 있다.

“주위에서 제 팬이던 사람들도 방송만 보고 이렇게 얘기해요. ‘아니, 그 사람 뭔데 그렇게 매력 있냐. 믿을 수가 없다. 이상하다’고(웃음)…. 형한텐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이)
“선태는 성격이 너무 선해서 모든 사람에게 예쁨을 받죠. 그런 선한 느낌이 춤에서도 드러나요. 춤에도 호감형·비호감형이 딱 보이거든요.”(안)

훌륭한 안무가 많지만 지원 프로그램 빈약
한 무대에 서지만 둘의 지향점은 사뭇 다르다. 이선태가 지난해 ‘STL아트 프로젝트’를 창단하고 장르 융합과 대중 지향을 선언한 반면, ‘대중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안남근은 세계 최고 무용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어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작년에 가고 싶던 해외 무용단에 못 들어갔어요. 뭐 해먹고 사나 고민하던 차에 주변 권유로 댄싱9에 나가게 된 거에요. 무용 시작하면서 꿈꿨던 무용수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다른 고민없이 춤만 추고 싶어요. 작년에 라트비아와 인스부르크에 잠시 있을 때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단 걸 알았죠. 그런데 한국에선 과정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안되요. 어쨌든 결과가 좋아야 되니 무용수가 홍보도 직접 하고, 먹고 살 걱정까지 해야되니 집중이 안되죠. 작품에만 빠지고 싶은데 자꾸 깨어나게 되요.”(안)

“저도 미국에서 한달 정도 무작정 오디션을 봤는데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걸 실감하고 돌아왔어요. 댄싱9에 나간 이유도 현실에 부딪쳐서죠. 이렇게 계속 해서 좋은 아티스트 되면 뭐하나, 아무도 안 보러오고 가족들만 보러오면 뭐하나 싶었죠. 내가 하는 예술을 남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방송 이후에 더 강렬해졌어요.”(이)

지난 연말 무용공연으론 유례없는 8회 공연을 시도한 STL 아트 프로젝트의 ‘더 트리’는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기획부터 홍보까지 혼자 해야하는 열악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한 달 공연을 하려고 했어요. 안 돼도 해보려고 했죠. 극장측에서 극구 말렸어요. 매진은 안됐지만 제 자신에겐 성공이에요. 너무 대중화에 쏠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들었는데 좋은 지적인 것 같아요. 무용극을 하고 싶어서 설명을 많이 했더니 너무 직설적으로 들린다는 분도 있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무용극을 하기 위해서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걸 알았죠.”(이)

“전 오히려 설명이 더 필요하다 생각해요. 어쨌든 이해돼야 되거든요. 확실한 작품 의도를 보여줘야 해요. 피나 바우쉬나 이사도라 던컨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넣지 않나요. 던컨은 어릴 때 육상선수였고 그리스로마 신화를 좋아해서 작품도 그리스로마 의상을 입고 달려요. 피나 바우쉬는 어릴 때 집이 카페였던 이야기가 ‘카페 뮐러’에 다 나오죠. 그들도 표현방식이 세련될 뿐, 이야기 구조는 작아요. 어쨌든 사랑하고 이별하는 이야기인데 굳이 추상적으로 만드는 건 이해가 안돼요.”(안)

안무가로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요.
이: 희망적인 이야기요. 일반적으로 욕먹을 거 같아서 못하는 이야기를 하는 안무가를 보면 닮고 싶어요. 사회비판적 메시지도 작품으로 풀어낼 수 있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안: 저는 정반대에요. 그때그때 내 느낌을 무대에 풀어내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되 남이 보러왔으면 좋겠어요. 내 얘길 하고 싶지 남의 얘길 하고 싶진 않네요.

전혀 다른 예술관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전에 없는 대중적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 현대무용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무용계에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일치했다. 대중맞춤형 공연으로 한시적 관객을 모으는 것이 아닌, 대중들이 진짜 현대무용을 즐길 수 있을 만한 기획이 가능해지려면 기업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안무가가 좋은 작품, 세계적인 작품 만들려면 자기 스타일을 찾고 정형화시키는 게 중요하겠죠. 그러려면 먹고 살 걱정 안 할 수 있도록 지원을 많이 받는 큰 무용단이 있어야할 것 같아요. 월급받고 출근하면서 재밌는 작품만 만들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안)

“대중을 위한 좋은 기획들이 늘어나야 해요. 한국인들의 예술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서요. 그래야 지원도 있을 것이고, 지원이 있으면 분명히 좋은 작품이 나올 거에요. 훌륭한 안무가는 많은데 생계형으로 이거저거 해야 하니 작품을 못하는 거죠. 일단 대중들이 많이 좋아해 주면 기업에서도 지원을 해주고, 그러다 보면 세계적인 작품도 나오지 않을까요.”(이)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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