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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도돌이표 한국전쟁 책임 공방 … 틀 바꿔 들여다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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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판문점 체제의 기원
김학재 지음, 후마니타스
702쪽, 2만7000원

이 책의 부제는 ‘한국전쟁과 자유주의 평화기획’이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에 대해 몰두해온 학계의 연구 방향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고 도전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본격적으로 제시하는 책이다. 이 문제를 다뤄온 학자들은 주로 ‘어떤 놈이 나쁜 놈인가’라는 문제를 두고 수십 년간 다퉈왔다. ‘나쁜 놈’이 북한이냐 한국이냐, 소련·동구권과 중국이냐···. 먼저 총 쏜 놈이 결국 나쁜 놈이다. 총을 쏘도록 살살 약 올린 그 카우보이 악당이 더 나쁜 놈이다 등등의 문제였다. 『판문점 체제의 기원』은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책임 공방을 뒤로하는 책이다. 이 분야의 판을 뒤흔들 수 있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다.

 책의 저자가 사회학자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분단 전후사 연구는 주로 정치학자들이 진행해 왔다. 정치학의 주된 패러다임은 현실주의다. 미국과 중국이 언젠가는 한번 붙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주로 현실주의자들이다. 평화의 가능성을 제도에서 찾는 사람들은 정치학에서 상대적으로 비주류인 이상주의자·자유주의자들이다. 이런 모든 정치학 내부의 논란으로부터 사회학자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보다 객관적일 수 있다.

 서평을 쓰기 위해 이 책을 마주한 순간 처음 떠오른 개념은 ‘상대적 자율성’이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뭔가를 도모하기 위해 사활적으로 필요한 것도 ‘상대적 자율성’이다.) 자율성이 곧 권력이요 주권이다. 자율성이 ‘상대적’인 차원에서라도 없으면 슬프게도 아무런 책임도 ‘죄’도 없다.

 이 책은 자유주의라는 이념에서 출발하는, 애초에는 철학·국제법에서 출발한 평화 프로젝트가 어떻게 한국전쟁이라는 세계사적 사건과 유엔이라는 인류 초유의 기구가 만났을 때 형상화 됐는지 조목 조목 밝히고 있다. 자유주의적 평화주의라는 이념, 유엔이라는 어쩌면 세계정부의 첫 발걸음일 수도 있는 기구가 과연 ‘상대적인 자율성’이 있을까. 만약 없다면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없다. 저자 김학재 박사는 ‘있다’는 것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기술했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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