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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반성, 독일은 진행형] 中. 학교에서도 반성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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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처럼 나치의 박해를 피해 해외로 탈출했던 유대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12일 독일 베를린 린덴슈트라세 14번지 유대인 박물관. 한 교사가 자신을 빙 둘러싸고 있는 10여 명의 청소년에게 질문을 던졌다.

"목숨을 건졌으니 감사하겠지만 행복하지는 않았겠지요." 한 학생이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베르겐 벨젠이 뭐 하던 장소인지 아는 사람?" 교사의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게토(유대인 거주지역)입니다." "아니야, 나치가 운영하던 집단 수용소야." 10대 학생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박물관 내 전시장 곳곳에서는 마치 교실을 옮겨온 듯 진지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간혹 어린 학생들은 진열대에 전시된 유대인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역사교육에 안성맞춤인 장소"라고 기젤라 벤더로트 교사는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프랑스 접경 지역인 자를란트주에서 버스를 타고 10시간을 달려왔다고 했다. 옆자리의 동료 페르디난트 룩셈부르거는 "독일의 역사교육은 학교 수업 못지않게 현장 견학도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직접 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교육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이번 견학 내용을 바탕으로 감상문을 써 오라는 과제를 낼 예정이라고 했다. 기자가 "나치의 역사를 수업시간에 얼마나 비중 있게 다루는가"하고 물었다.

벤더로트 교사는 마침 갖고 있던 역사 교과서를 보여주며 "히틀러 나치의 역사는 12년에 불과하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나치 시대의 비중은 30%가량 된다"고 덧붙였다.

독일에서는 나치 만행을 역사 교과서 외에 윤리.사회.종교 등의 다른 교과서에서도 다루고 있다. 역사 교과서를 편찬할 때는 폴란드나 프랑스 등 제2차 세계대전 피해국들과 상의하기도 한다. 특히 프랑스와는 양국 공동 역사 교과서를 제작 중이다.

벤더로트 교사는 "독일 역시 과거사 반성에 인색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1950년대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의 보수 기민연합(CDU)이 집권하던 때였다. 나치에 협력한 부역자 문제를 덮어두는 쪽을 택했다. 사회 안정과 통합을 위한다는 명분이었다.

1960년대 들어 경제가 부흥하자 독일인들은 여유를 갖고 과거사를 돌아보게 됐다. 69년 사민당(SPD)소속 빌리 브란트 총리가 집권하면서 반성이 본격화했다.

그는 이듬해 12월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독일의 반성과 사죄를 국제사회에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유대인 박물관의 멜라니 플로츠카 공보관은 "과거의 잘못을 감추려 하지 않고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역사의 짐을 나눠 지려는 태도를 현재 독일인 대다수가 갖고 있다"고 말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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