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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의 출석 체크 "윤병세 장관 어디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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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완구 국무총리

지난 18일 오후 3시20분 정부서울청사 9층 회의실. 이완구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6·25전쟁 납북자 진상규명위원회’ 제17차 회의가 175명을 납북자로 추가 결정하고 순조롭게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회의 막판에 이완구 총리가 마무리 발언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으면서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어디 갔나요.” (이완구 총리)

 “외빈 접견 중입니다.” (조태용 외교부 1차관)

 “(강신명) 경찰청장은 어디 갔어요.” (이 총리)

 “경찰대학 졸업식에 참석했습니다.” (이상원 경찰청 차장)

 대리 참석한 차관, 차장의 설명을 듣고도 이 총리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총리를 포함해 다들 한가해서 오늘 이 회의에 온 게 아닙니다. 통일부 장관이 얼마나 바쁜지 아세요? 국방부 장관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문제 때문에 정신없는 데도 왔어요!” 그러면서 힘주어 한마디를 보탰다.

 “돌아가서 (내 지적을) 똑바로 전달하세요.”

 “….”(조태용 차관, 이상원 차장)

 회의 참석자들이 전한 당시 상황이다. 장관·청장에게 가서 “똑바로 전달하라”는 이 총리의 지시에 조 차관이나 이 차장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총리는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이 위원회의 회의를 주재했다. 위원회는 정부 측 당연직 위원, 해당 분야 전문가와 납북자 가족이 포함된 민간위원으로 구성됐다. 이날 회의엔 총리실 직원까지 포함해 모두 30여 명이 모였다. 하지만 정부 당연직 위원 6명 중 윤 장관,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강 청장이 차관과 차장을 대신 보냈다. 이에 이 총리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비교해 가며 윤 장관 및 강 청장에게 사실상 ‘옐로카드’를 꺼냈다. 아프리카 출장을 떠난 정 장관도 정재근 차관을 대리 참석하게 했으나 그는 사전에 총리실에 양해를 구해 ‘출석 체크’ 대상에서 빠졌다.

 보통 대통령 주재 행사에는 장관이 참석하고, 총리가 주재하는 위원회(49개) 회의엔 차관들이 대신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총리는 그런 관행을 용납하지 않을 태세다. 앞으론 총리 주재 위원회 회의에도 장관이 직접 참석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이 총리의 질책이 유독 윤병세 장관에게 집중됐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 총리가 ‘실세 총리’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실세 장관’을 시범 케이스로 삼은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17일 취임한 이 총리는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내각에 대한 장악력을 서서히 끌어올려왔다. 취임 일주일 뒤인 지난달 24일에는 “일 못하는 장관은 대통령에게 해임을 건의하겠다”면서 헌법이 보장한 총리 권한(해임건의권)을 분명히 행사할 뜻을 밝혔다.

 지난 12일에는 ‘부정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사정 정국의 중심에 서 있다.

 이번엔 장관에 대한 ‘출석체크’를 통해 내각에 대한 고삐를 다시 한번 조였다. 장관들이 자신을 기존의 ‘대독(代讀) 총리’나 ‘의전(儀典) 총리’처럼 보고 접근하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 총리의 ‘경고’가 입소문을 타고 관가로 퍼지면서 외교부에 비상이 걸렸다. 외교부 당국자는 “윤 장관은 그날 오후 3시 정부서울청사 별관 17층에서 방한한 나빌 파흐미 이집트 전 외교부 장관을 접견했다”며 “시나이반도 테러로 우리 국민이 숨졌을 때 도와줬고 정치적 영향력도 커 장관이 직접 만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장세정·유지혜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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