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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 시민도 나서는 유럽 … 정부에 기대는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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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양로원에서 노인들이 균형을 잡는 운동을 하고 있다. 노인들이 스스로 걷게 돕는 비영리협회 ‘시엘 블뢰’ 담당자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프랑스 젊은이 두 명이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교육비가 싸고 지속 가능한 모델이어서 스페인·벨기에 등 유럽 다른 나라로 퍼지고 있다. [사진 시엘 블뢰]

아르카이츠 아유아 이글레시아스(29)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노인시설을 돌며 운동요법을 가르치는 트레이너다. 2013년부터 이 일을 했다. 그는 “노인들이 잘 걷도록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자 10~15명을 모아 한 시간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교육 내용은 몸 상태에 따라 구분한다. 혼자 움직일 수 있는 그룹, 지팡이를 짚는 그룹, 휠체어를 타는 그룹, 걷지만 치매를 앓는 그룹, 걷지도 못하고 치매를 앓는 그룹 등 다섯 단계다. 혼자 움직일 수 있는 그룹엔 무릎을 올리거나 큰 천을 나눠 잡고 올렸다 내렸다 하는 동작 등을 시킨다. 팔·다리의 근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지팡이에 의존하는 그룹엔 바닥 줄을 따라 걸으며 중심을 잡게 한다. 치매환자들에겐 여러 색깔을 표시해 놓고 특정 색깔만 밟게 하며 두뇌 사용을 돕는다.

 그가 가르친 운동요법은 ‘시엘 블뢰(Siel Bleu)’라는 프로그램에 근거한다. 이 프로그램은 1997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스포츠과학을 전공한 청년 두 명이 만들었다. ‘Siel’은 프랑스어로 스포츠, 이니셔티브, 여가(Sport, initiative Et Loisirs)의 약자다. 시엘은 프랑스어의 하늘(ciel)과 발음이 같아 시엘 블뢰는 ‘푸른(bleu) 하늘’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들은 같은 이름의 비영리협회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프랑스의 요양원 4000곳 이상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벨기에·아일랜드·스페인 등으로 퍼졌다.

 시엘 블뢰는 시민들이 나서서 지속 가능한 노인 복지 프로그램을 만든 사례다. 이처럼 유럽에선 생활과 밀접한 이슈에 민간이 활발하게 참여한다. 이글레시아스는 “정부는 사람들이 다치거나 아파야 돌봐줄 뿐 예방 활동은 하지 않는다. 2012년 연구에 따르면 시엘 블뢰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들은 낙상으로 다치는 비율이 35%가량 낮았다. 그만큼 세금도 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레이너들은 양로원 등 복지시설이나 노년층이 많이 사는 지역을 방문해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복지시설 등에선 트레이너에게 교육 비용을 낸다. 15명 정도 그룹에 시간당 40유로(약 4만8000원) 정도다. 개인당 3000원 수준이다. 트레이너는 재능 기부로 참여해 가르치며 이 수익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시엘 블뢰 측은 수익금의 일부를 연구 자금으로도 쓴다. 이글레시아스는 “다른 직장에 다니면 돈을 더 벌 수 있겠지만 노인들을 돌본다는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고 말했다.

 고령화 해법도 민간이 모색하는 유럽과 달리 국내에선 시민운동이 정부 비판 역할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한국의 시민운동은 반정부적 정치 활동에 머물 뿐 시민이 참여해 공동의 이슈를 개발하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외국에선 시민단체가 국책사업 조정 기능을 맡거나 싱크탱크 역할까지 한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교육·환경·교통 등 지역사회의 문제에 대해 시민들 스스로 목소리를 내려는 의식이 중요한데 우리나라에선 아직 다른 사람이 해주길 기대하는 무임승차 의식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온라인 카페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젊은이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런 움직임을 건전한 시민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빌바오(스페인)=김성탁 기자, 신진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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